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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일상에서

들꽃, 그 초연함에 감동하다


  버스정류장 근처에 전혀 관리되지 않는 화단이 있습니다.


십 여 년 전에 건축된 6층 빌딩 앞에 설치된 화단인데요,

초기에 심어진 나무들은 두 그루의 사철나무 외에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나무가 사라진 공간에 다양한 풀들이 시나브로 모이게 되면서,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들의 전유공간이 된 지도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여름이면 다양각색의 풀들이 매미와 더불어 시간을 나누는 공간이면서,

가을에는 귀뚜라미 등 풀벌레의 대화상대가 되어주는 광장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잡초라고 부르지만 이유없이 존재하는 생명은 없을 겁니다.


단지 사람의 생활에 도움이 안되는 존재라 해서 부르는 이름일 텐데요,

이들도 사람처럼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점에서 홀대는 왠지 부당해 보입니다.


풀들이 화단을 온통 차지하게 되면 6층 교회의 목사부부가 나서서 제거합니다.

풀들과 목사부부의 전쟁이 무시로 벌어지는 치열한 공간이 된 거죠.





  봄의 따뜻한 기운이 누리를 채우며 땅의 풀씨를 부릅니다.


땅 속에는 막 뒤의 배우처럼 머리를 내밀 때를 기다리는 많은 풀씨들이 있는데요,

때가 되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올 그들보다 훨씬 앞선 풀이 있었습니다.


며칠 전 출근길에 눈길을 사로잡은 들꽃입니다.

옷매무새를 잘 가다듬어 아름답게 피워 낸 꽃이었습니다.





  [어린왕자]의 장미처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아름답게 가꾼 것입니다.

무던히도 바쁘게 돌아가는 사람 세상의 한 모퉁이에서 들꽃 친구는 홀로 초연했던 거죠.


흔히 사람들은 꽃이 사람을 위해서 꽃을 피우는 것처럼 착각하곤 합니다.

꽃은 자신을 위해서 피우는 것인데 보는 사람까지 행복하게 만들 뿐입니다.


작지만 초연한 들꽃을 보면서 꽃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스스로를 위해 꽃을 피우지만 보는 이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일석이조의 삶이거든요.





  더불어 사는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작은 스승에게 감동하는 순간입니다.

지구를 함께 하는 들꽃도 이처럼 소중한데 지능 높다는 인간은 그 사실을 자주 잊습니다.


지능이 최선이라면 인공지능보다 인간이 결코 뛰어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물의 영장은 사람이 아니라 만물은 모두 그 자체로 더 없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떠올려 봅니다.


출근길 만난 들꽃의 초연함에 마음이 훈훈해지는 참으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