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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동물세상

참새를 대하는 까치와 비둘기의 차이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새는 세 종류입니다.

참새와 비둘기, 그리고 까치입니다.


간혹 까마귀와 직박구리가 보이곤 하는데요,

개체 수에서 두 종은 앞의 세 종 과는 차이가 큽니다.


특히 직박구리는 울음소리가 크고 음악적이라서 매우 관심이 큰데요,

출근길에는 꼭 나타나서 한 곡조 부르고 사라지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섬처럼 조성되어 그다지 우거지지도 않은 작은 공원에서 사는 그들을 보면서,

다른 종과 더불어 산다는 것의 즐거움을 매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도시에서도 까치는 비둘기만큼은 아니지만 자주 만날 수 있는 새입니다.

까치가 비행하는 모습을 보면 하얀 날개에 반사하는 빛까지 정말 아름답습니다.

도시의 하이에나처럼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비둘기와는 근본이 꽤 다른 새 같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까치의 외모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삶의 현장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원래 까치는 성격이 난폭한 것으로 알려진 새로 맹금류까지 무리지어 공격하는 새입니다.


작은 참새를 대하는 까치와 비둘기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거리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까치는 자기 주변에 참새가 있으면 바로 따라가서 참새를 쫓아내길 반복합니다.


딱히 자기 영역도 아닌 듯한데 참새가 가로등에 올라가면 바로 따라가서 내 쫓고,

뜨거운 콘크리트 바닥으로 내려가면 곧바로 따라가서 저 멀리 몰아내 버립니다.





  평소에 보면 참새도 자주 오가는 지역인데 새삼 까치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듯합니다.

고공비행을 못해 낮은 곳에 머무는 참새의 영역까지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일입니다.


자기 땅이라고 이웃 주민의 통행까지 방해하는 나쁜 인간과 꼭 같은 못된 행태입니다.

애초 땅을 어머니로 알았기에 소유권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인디언이 떠오릅니다.


현재의 미국은 그러한 인디언을 몰아낸 백인들의 성공담으로 기억되고 있을 뿐인데요,

대지의 여신인 땅에 금을 긋고 소유권을 주장한 때부터 불평등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비둘기는 주위에 참새가 있든 없는 신경쓰지 않고 먹거리 활동에만 바쁩니다.

아파트 화단과 정원에서 먹이를 찾느라 바쁜 참새들도 비둘기를 신경쓰지 않습니다.

서로 부담주지 않고 각자의 삶을 영위하는 참 공존의 모습을 보여주는 새들입니다.


때문에 까치주위에는 다른 새가 없지만 비둘기 주위에는 참새가 자주 보이곤 합니다.

체구는 몇 배 크지만 공존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대동 세상을 각본없이 보여주는 거죠.





  정의의 길로 대장정을 진행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인간사회의 화두는 갑질 근절입니다.

더 가졌다고 덜 가진 이들에게 가해지는 횡포인 갑질은 비둘기만도 못한 못된 행태입니다.


참새를 대하는 까치와 비둘기를 보면서 인간도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