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아지/도그스토리

강아지 털보의 회상

  기억의 줄을 잡고 끝까지 따라가 보면 언젠지 확실치 않은 어린 시절에 이르게 됩니다.
그 시절에 살던 집들 마당 한 구석에는 항상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어쩌다 끓어진 시기를 제외하면 어린 시절부터 강아지는 언제나 함께 살았던 존재였죠.
그렇게 살았던 강아지들 중에서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강아지가 바로 '털보' 입니다.

길게 자란 검은색과 갈색 털이 고루 섞인 작은 체구에 온순한 성품을 지녔던  강아지!  털보~
이제 생각해 보니 여러 견종이 섞인 믹스견이었지만 그 당시엔 지금처럼 순종의 개념이 없었습니다.

  하루 두 끼주는 밥 외에는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던 그 시절 대부분의 강아지들처럼,
털보도 때 되면 알아서 임신하고 혼자 새끼들 낳아 기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은 일반화된 애견이란 개념조차 없었기에 사료나 간식 또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미국등 서구에서는 판매되고 있었지만 국내에는 수요가 없으니 수입할 이유가 없었겠죠.
때문에 가족이 먹다 남은 밥에 국을 대강 말은 것이 일상의 식사였습니다.

먹거리가 그 모양이니 목욕이나 브러싱조차 한 번 해 준 적이 없었던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런 것을 해 주어야 하는지도 몰랐으므로 하늘 우러러 부끄러울 일이 한 점도 없었던 거죠.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모른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니 무지의 극치라고나 해야 할까요~




  지금도 털보가 마당을 차지했던 시기의 일들이 슬라이드처럼 가끔 한 장씩 떠오르곤 합니다.

윗 형제들에 치인 억울함을 가만히 있는 털보에게 가끔 풀었던 일,
털보 주둥이의 수염이 갑자기 눈에 거슬려 가위로 모조리 잘라 버렸던 일,
어느 날인가는 밥에 말아줄 국조차 없어서 간장과 참기름을 물에 타서 주었던 일등...

반려동물~ 이처럼 매력적인 단어의 수혜를 그 시절의 개들은 받지 못했습니다.
털보 역시 반려동물이 아닌 잔반을 먹다 여름철에 사라지는 개들중의 하나였을 뿐이었죠.

학교갔다와서 왠지 마당 한 구석이 휑뎅그렁하면 개가 팔려 나간 날이었습니다.
눈물흘리면서 이별을 아파하지만 잠시뿐, 귀여운 강아지가 빈자리를 메꾸면 시나브로 잊곤 했죠.

아직까지 털보가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다른 개보다 더 힘들게 대했던 지난 잘못 때문입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털보야!
지금 아는 것을 그 때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그렇게 허투루 대하지는 않았을텐데...

 


  예전보다 믹스견에 대한 대우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보호소에서의 안락사 1순위가 순종을 선호하기 때문에 입양이 어려운 믹스견이라고 합니다.

개를 순종이나 믹스견으로 나누는 것은 인간의 구분일 뿐 개는 모두 한 종일 뿐입니다.
가족이 사랑하면 애견이고 버리면 유기견이 될 뿐이죠.

일부 믹스견을 똥개라고 차별하는 사람들을 보면 매우 황당해 집니다.
차별은 자신과 남을 헤치는 직간접적인 폭력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