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식용 반대 3 편 - 개식용은 결국 식탐?
이제 개 식용을 전통문화이기 때문에 무조건 존중되고 보전되어야 한다고 주장 할 수는 없을 것이며,
이 시대의 서민들이 양질의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꼭 필요한 먹거리의 대상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존중받아야 할 전통이 아님에도 굳이 개식용을 중단할 수 없다는 사람들에게 남은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몸에 좋은 음식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이들의 정신회로에 박힌 무한대의 식탐! 바로 그 것이 아닐까요!
개식용에 붙인 명칭을 봐도 '보신탕' 이니 '영양탕'이니 '사철탕'이니 하며 식탐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권안보차원에서 올림픽을 유치한 전두환 군사정권은 미국 및 서구국가들의 눈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1984년 '개 도살 및 식용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그 해 보신탕집들은 대로변에서 쫓겨났습니다.
서울시 고시 94 호에 따라 보신탕은 뱀탕, 용봉탕, 굼벵이탕과 함께 아직까지도 영업금지 대상에 포함됩니다.
그러함에도 현재 전국적으로 5,000여개가 넘는 업소가 성업중이며 개농장은 2만여개를 헤아리는 실정입니다.
또한 현재 이 나라의 일부 국민들이 개고기를 보신식품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매년 여름만 되면 개식용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무수한 다툼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고기가 소화가 잘되고, 병후회복에 좋다느니, 정력에 좋으니 하는 이유로 식용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한 지금 예전부터 먹었던 것이라 해서 지금도 먹어야 한다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조선왕조 후반기에 벼슬아치들의 학정과 가뭄등의 자연재해가 겹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였습니다.
그 때 불쌍한 서민들중 일부가 살기 위해 인육을 먹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 후반기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즉, 살기 위해서는 그런 끔찍한 일도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동물이 가진 원초적 본능입니다.
그러나 기아를 면하기 위한 비상시국이 아닌 평시에 인육을 먹는다는 것은 감히 생각조차 해서는 안될 일이라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지성만이 추구할 수 있는 문화적 가치이며 문화적 성숙도를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볼 때 반려동물로 자리잡은 개식용을 평상시에도 한다면 문화적 후진성을 증명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고기 이외에는 단백질을 보충할 수 없던 시절에는 살기 위한 비상대책차원에서 충분히 용인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먹거리가 넘쳐 지나친 영양공급이 문제되는 시대이므로 굳이 개까지 식용할 필요성이 없어졌습니다.
오직 개식용을 즐기는 일부 사람들의 입맛과 보신이라는 과학적 근거조차 없는 탐욕에 다름아닐 것입니다.
참고로 그들이 보신명목으로 뱃속에 채워 넣고 있는 것의 실체는 이렇습니다.
개농장에서는 비위생적인 환경과 개의 특성을 생각하지 않는 사육으로 인해 개들이 수 없이 죽어 나가게 됩니다.
죽은 개는 일일이 파묻을 수도 없으므로 짬밥에 섞어 개먹이로 주는 농장도 있다는 사실이 얼마전 동물농장에 소개됐죠.
또한 식탁에 오르기까지 각종 항생제 주사와 전염병을 퇴치하는 약들을 수시로 먹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개식용을 즐기는 이들에게 일반적인 상태의 개농장을 견학시키면 얼마나 놀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식당에서만 식용하던 그들이 개농장의 비위생적인 실상을 직접 보게 된다면 식탐이 저절로 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개는 늑대의 후손으로서 소나 돼지와 달리 활동성이 강한 동물이므로 한 마리당 10평 정도의 사육공간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큰 수익을 목적으로 소, 돼지에 적용하는 공장식 축산방식은 특성상 불가능한 동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개농장들은 개들의 특성을 배려하는 환경과 거리가 매우 멀기 때문에 비위생적일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과학적 근거도 없고 비위생적인 상태에서 생산되며 개식용의 악습을 이어가는 구태가득한 사람으로 비난받을 것인지,
아니면 새 시대의 위상에 맞춰서 개식용의 악습을 근절하고 반려동물로서 인식을 새롭게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서양에서 개식용을 반대하기 때문에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 선진문화차원에서 개식용금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소나 돼지, 닭등도 사람과 가까운 동물이고 정서적인 유대를 충분히 나눠 가질 수 있는 동물이지만,
인간과 가장 먼저, 가장 가까이에서 정서적인 교감과 친화력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은 개 뿐이기 때문입니다.
마야의 인신공양, 원시사회의 식인문화가 박물관의 유물로 사라졌듯 개식용은 빨리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입니다.
현대화된 우리가 식인문화에 경악하듯이 우리의 후손들이 일부 선조들의 개식용악습에 탄식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개식용 문화권역이 인류학책에 도표로 나올 때 우리나라가 도표 위에 표시되지 않는 날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잔인해야 자기를 사랑하는 친화력 강한 동물을 식용으로 할 수 있냐며 후손들이 묻지 않도록 말이죠.
아주 오래전에 가축화되어 인간과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며 사랑을 주고 받아 온 충성스런 동물 개!
지역과 민족, 환경이 다른만큼 문화도 다르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기준은 마땅히 존재합니다.
문화가 각기 다른 민족이 처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하여 다양하게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면,
단백질의 공급원으로서 개고기가 가진 역할은 모든 것이 풍부한 이 시대에는 벌써 끝났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이러한 문제를 논해야 하는 탐욕넘치는 상황이 매우 개탄스러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