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견미용과 애견사치용품의 역사
견종이 가진 특색에 맞춰 털을 멋지게 다듬어 준 강아지들을 보면 정말 예쁘고 귀엽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애견미용은 경제적 부담도 적고 관리에 편하다는 이유로 '빡빡이'가 대세더군요
올바른 미용은 삭발이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처럼 털을 정리하여 관리하는 개념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삭발 수준의 미용은 미용사나 가족에게는 편할 수 있지만 강아지들 입장에서는 아니거든요.
더운 여름이 되면 더욱 짧게 깎는 경우가 많은데 건강을 위해 털을 어느정도 남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오랜세월동안 진화해 오면서 사람은 초단모종이 되어 털이 없어도 건강에 지장이 없지만,
차이니즈 크레스티드 독외의 모든 견종에게 여전히 털이 있다는 것은 삶에 필요했기 때문이거든요.
그렇다면 애견미용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헬무트 브라케르트와 코라 판 클레펜스 공저인 '개와 인간의 문화사'에서 관련 내용을 볼 수 있더군요.
저자들에 따르면 이미 19세기초 프랑스 파리에 애견미용실이 생겼다고 합니다.
센 강변 도처에 애견미용사들이 자리잡고 앉아서 유행견들의 털모양을 단장했다고 하는데 상상되시나요?
또한 개에게 사치스러운 치장을 해 주는 관습도 최근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이스 아테네의 정치가인 알키비아데스의 개는 금목걸이를 하고 다녔고,
이집트 왕들의 개는 귀금속을 달았으며 루이 15세는 8살 때 은제 개목걸이를 사느라 금화 한 줌을 썼다네요.
그 시대의 애견가들은 자기 애견의 세밀화를 의뢰하고 고급 애견학교에 보내며 파티까지 열어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1850년 윌리엄 브럼리가 러던에서 개최한 '불독 티 파티'를 비롯하여,
1853년 클라크 부인이 시카고에서 개최한 '일본개 축제' 등이 기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애견 잠옷, 밍크 코트, 각종 가구, 장신구, 궁전같은 개집은 오늘날에 와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죠.
19세기 런던 본드 스트리트의 애견미용실에서는 개 매니큐어는 물론 향수 목욕까지 해 주었고,
'팔레로얄' 이라는 개의상 전문가들은 애견외투, 재킷, 숄, 수영복까지 만들어 주었습니다.
'마담 알베르'라는 곳은 개 전용 뷔페음식까지 제공했다고 하니 정말 통큰 씀씀이라고 해야 겠지요.
베를린 애견백화점에서는 도수가 다양한 불독안경을, 드레스덴에서는 애견용 고무장화를 판매했고,
런던의 애견구두점에서는 비오는 날 신을 수 있는 러시아제 가죽구두를 맞춰 주었다고 합니다.
한편 귀부인들 애견의 주둥이를 닦아 주는 특수 손수건 한 쪽에는 개의 이름이 수놓아져 있었죠.
요즘 애견가들의 경우 개의 이름은 목걸이에만 써넣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매우 놀라운 일이지요.
특히 여주인의 옷 색깔에 어울리도록 개의 털을 염색해 주는 것이 유행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1899년 런던에서 시작된 이러한 유행은 애견을 위해 얼마든지 돈쓸 준비가 된 부유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때문에 유행견은 사치품이었고 그 결과 애견전시회가 생겨나고 벌이가 좋은 사업으로 성장해 온 거죠.
쇼펜하우어와 애견
쇼펜하우어는 두발 달린 동족의 인간 중심적 정서에 분노와 불신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철학자죠.
반면 자신의 갈색 푸들 강아지 '아트마'에 대한 애정이 매우 각별한 애견가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누군가 아트마에게 욕설을 했다면 최고의 욕설은 이랬을 거예요.
"이런, 인간같은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