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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도서리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전후로 전두환 일당의 만행이 폭로되고 있습니다.

충격적인 일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그자들에겐 진실한 반성과 양심선언이 천국에 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이들의 졸렬한 행태를 보면서 자주 떠오르는 인물이 아이히만이었습니다.


아이히만은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으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1906년 10월 14일 독일 하노버 근교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의 지도를 받은 철학사상가이며 나치를 피해 미국에 이주하게 됩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정권이 자행한 ‘최종해결’이라는 유대인 대학살의 실무책임자였습니다.

독일 항복 후 미군에 체포되었으나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하여 아르헨티나로 도주합니다.


그 곳에서 10년간 가명으로 살다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체포되어 압송되는데요,

이 때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는 예정된 대학 강의를 취소하고 미국의 교양잡지 [뉴요커]의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재판관련 내용은 [뉴요커]의 지면으로 1963년 2월부터 5회로 나눠 기사로 게재되었으며,

1965년에 후기를 붙여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으로 발간되어 오늘에 이릅니다.


이 책에서 아렌트는 1961~62년동안 진행된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범죄의 책임자라기보다는 희생자에 가까운 사람으로 묘사했습니다.


아이히만은 학살의 기획자라기보다는 아주 충실한 하수인이었다는 점에서 일리는 있습니다.

그는 나치당의 강령도 알지 못했고 명령에 따른 나치 친위대 중간 관리자에 불과했거든요.



저자 한나 아렌트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아이히만은 ①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수백만 명 학살, ② 치클론-B 독가스 도입 및 운용, ③ 리투아니아 8만 명 학살, ④ 라트비아 3만 명 학살, ⑤ 벨로루시아 4만5천 명 학살, ⑥ 우크라이나 7만5천 명 학살, ⑦ 키에프 3만3천 명 학살 계획 입안 등 모두 15가지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모두 유죄판결을 받아 사형집행을 받게 됩니다.


아이히만은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며 끝까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량학살이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수행한 하수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렇게 주장합니다.

“나는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신 앞에서는 유죄이지만 이 법 앞에서는 무죄다”


이 책이 유명해진 것은 한나 아렌트가 사용한 ‘악의 평범성‘ 이라는 단어 때문일 것입니다.

‘악의 평범성’은 본문 마지막 글인 다섯 번째의 글 말미에 한 차례만 등장했는데도 말이죠.





  하수인이자 능동적 집행자였던 아이히만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대상인 유대인의 운명을 알면서도 범죄인지를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렌트는 악이 특별한 외면이 아니라 평범한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일상적인 악을 행한다는 것은 비극의 극한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결코 인지하지 못했던 세 가지 무능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이 그것입니다.

아이히만은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장으로 수송한 책임자였으나 평범한 관료였다는 거죠.



자서전 집필중인 아이히만


  나치의 강령을 체득해서 행동한 것이 아닌 일상의 업무를 생각없이 수행했다고 본 겁니다.

이러한 아렌트의 평가는 유대인을 포함한 많은 이들로부터 비판받게 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횡포한 권력자의 명령을 생각없이 또는 신념으로 무조건 이행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악마의 본성을 가졌는지 와는 별개로 과연 선악을 구분할 줄 몰랐을지 의문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 존재의 근원에는 악에 대한 거부와 선에 대한 갈망이 상존합니다.

미필적 고의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하는 것은 모를 수 없는 악의 발현과 같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악의 평범성’보다는 조직의 명령계통을 흐르는 ‘악의 일체성’에 주목하게 됩니다.


악의 평범성을 강조한다면 능동적인 선의 진정성을 약화시킬 위험성이 커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악은 반드시 단죄되어야 하며 선은 반드시 장려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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