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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일상에서

납골당에서

 

  모친의 납골당에 가는 길,

시외버스터미널은 오가는 사람들로 번잡합니다.

 

가방을 들고 맨 사람들이 분주한 사이에서 하늘을 봅니다.

회색 구름커튼이 하늘 가득 펼쳐지더니 마침내 비가 오십니다.

 

가을비는 잔잔하고 부드러운 숙녀의 걸음을 닮았습니다.

산뜻한 바람을 걸친 가을비를 마음 한가득 입어 봅니다.

 

아침에 시작된 가을비는 온 종일 친구가 되어 줍니다.

가을비와 인사하는 산 정상의 부드러운 안개구름을 보면,

그 어느 나라 산과는 다른 포근한 정겨움이 가슴을 채웁니다.

 

납골당 앞에는 작은 인공 호수가 있습니다.

먼 곳에서 찾아온 물방울 손님을 만나는 순간, 순간마다 설레임이 퍼져 갑니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시간은 이렇듯 잔잔하고 조용하고 신성합니다.

 

 

 

 

  납골당에는 많은 분들이 더불어 안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그 많은 소음 하나 들리지 않고 오로지 영원의 시간만이 흐릅니다.

 

모친이 좋아하셨던 음식을 올리고 영원을 함께 느껴 봅니다.

시작도 끝도 없을 그 시간, 우주가 시작되기 바로 전의 그 느낌 말입니다.

 

영원의 흐름이 시간으로 명명된 이후 인간 스스로 속박받는 노예가 되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이 없는 영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특별한 공간, 납골당~

그래서 이곳에 오면 생사의 오고감 없는 안식을 느끼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지구의 막내 인간이 출현하면서 조용했던 지구가 너무도 번잡스럽게 변했습니다.

인간이 더불어 사는 뭇 생명들에게 겸손해야 할 이유입니다.

 

인연에 대한 인사를 마무리하면서 주위 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100세 수명을 말하는 시대에 20대 초중반에 별이 되신 분들도 여러분 계십니다.

40대, 50대, 6-70대 등등, 오심은 순서가 있으나 가심은 순서가 없음을 절감합니다.

 

100세를 마치 당연한 수명처럼 여기는 시대에 왠지 어색함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태어난 모든 인간은 각자의 수명이 있고 인연 따라 살다 인연이 다하면 떠나갑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은 시대에 과도한 수명연장이 바람직한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부여받은 생명 힘들지 않게, 과포화상태인 지구에 부담주지 않는 방식이 좋을 듯합니다.

 

살고자 태어나, 살려고 하는 생명 중에서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생명에 연연하는 행태도 탐욕이라는 것을 납골당에서 다시 한번 배웁니다.

 

부드러운 능선 아래 자리 잡은 아름다운 납골당은 빗소리만 들리는 가을로 가득합니다.

허기도 배부름도 전혀 없는 정신의 충만감을 느끼며 더 없이 행복해 지는 순간입니다.

 

 

 

  Thank you for giving birth to me, mother. I lov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