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인/일상에서

강아지풀, 익어가며 고개숙인 벼처럼~

 

  여름과 가을이 교대하던 어느날의 아침,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가로변 회양목 주위에서 낯익은 풀이 보였습니다.


키작은 회양목 위로 고개를 내민 주인공은 강아지풀이었죠.

 

강아지꼬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개꼬리풀'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어린시절 즐겨 놀던 기억이 나더군요.

 

개꼬리처럼 생긴 부분을 잘라 팔찌처럼 손목에 감기도 하고,
친구들 목을 간지르거나 손바닥에 놓고 불기도 하며 다양하게 놀았습니다.

 

요즘처럼 장난감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강아지풀은 참 재미있는 놀이도구였거든요.


여름철부터 초가을까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친근한 풀이었기에,
풀밭이 흔하지 않은 도시에서 만나면 더욱 반가운 대상이지요.
어린시절의 순수한 마음이 머물던 자연친구라서 그렇겠죠.

 

 

 

 

한없이 빨라지는 사회속도에 스트레스를 받는 도시인들에게
소박한 풀이 주는 작은 기쁨은 느낄 줄 아는 이에게는 정말 소중한 행복입니다.

 

강아지풀의 꽃말은 동심과 노여움이라고 합니다.
동심은 이해가 되는데 노여움이 의미하는 것은 모르겠네요.

 

 

 

 

처서가 지난 어느날, 회양목 주위가 왠지 허전해 보이는 겁니다.
살펴보니 강아지풀이 잘 보이지 않는 거예요.

 

잡초제거반이 다녀갔나 싶어 찾아보니 살아남은 강아지풀이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더군요.

익어가며 고개숙인 벼처럼 말이죠.


벼과의 풀이라 그런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기품까지 닮았나 봅니다.

 

 

 

 

  강아지풀은 대표적인 잡초중의 하나로 분류됩니다.
밭주위나 화단에 생기면 제초대상이 되어 뿌리뽑히는 경우가 많은데요,
인간의 시선에서는 잡초일 수 있으나 자연의 시선에서 잡초란 없습니다.

 

모두가 살기위해 분투하는 생명일 뿐이지요.
자연에서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은 소중한 존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거든요.

 

강아지풀이 익어가면 조 같은 씨가 떨어지고, 그것을 착한 새들이 먹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러한 이치를 자주 망각하는 인간이라는 종이 가장 문제겠죠.

 

 

 

 

  강아지풀이 사라진 풍경입니다.
사막에서 자기 별로 떠난 쌩텍쥐베리의 동화 [어린왕자]의 마지막 장면처럼 허전해 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