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법정스님의 의자’를 다시 만났습니다.
2010년 3월, 입적하신 이듬해 이 영화가 상영되었는데요,
영화관에 가서 본 이후 벌써 5년이 지났네요.
성인이 가셔도 그분이 남긴 가르침은 전혀 변색되지 않습니다.
흙탕물위에 핀 연꽃이 아름다움에 조금의 손색을 받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그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감동이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상중의 허허로움에 마음을 더 비웠기 때문일까요,
‘본래무일물’이라는 구절에 깊은 동의를 하게 됩니다.
불교적 관점에서 생과 사는 별개의 것이 아니거든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유명세를 떨친 종교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분들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법정스님입니다.
정신을 지주로 삼아야 할 종교조차 물신주의로 흐르고 있는지는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교회가 대형화되고 절의 외형이 화려해 질수록 본래 종교의 의미는 탈색된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종교가 물신주의, 즉 돈에 좌지우지되는 현실은 참 심각한 일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종교가 ‘돈교’가 되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거든요.
언론이 사회의 목탁이 되지 않고 종교가 정신의 목탁이 아닌 사회에 희망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총체적인 도덕적 해이가 횡행하는 것은 올바른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권력이나 재력을 가진 자들일수록 심한 탐욕에 빠져 온 몸을 던지기에 바쁜 나라,
비틀어진 자들이 더 큰 위치에서 큰소리치는 나라에 희망이 찾아오기는 어렵습니다.
올바른 삶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들이 더 악화되어 가는 이 사회에서,
일반인이나 종교인을 떠나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든 당당하게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는 모든 곳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각자의 로마법이 있기 때문인데요,
그 로마법이 자신의 정당한 생각과 다르다고 해도 개선을 요구하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왜냐하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익숙한 관습에 안주하는 사람이 대다수거든요.
하지만 역사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류의 발전은 관습에 안주하는 다수가 아닌 개선을 요구한 소수덕분이었다는 사실을요.
그런 점에서 법정스님의 삶은 어두운 사회를 밝히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라 하겠습니다.
반민주와 축재등 사회의 부조리와 종단의 문제를 결코 외면하지 않았고,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며 ‘중답게 살다 중답게 떠난’ 분이기 때문이죠.
이 영화는 맑고 아름다운 법정스님의 삶처럼 영상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위 사진들은 아름다운 영상중에서 몇 장만 가져 온 건데요, 볼수록 좋네요.
이문세의 엔딩곡도 무척 좋더군요.
혹여 안 보신 분이나 전에 보신 분들도 꼭 다시 보시길 권합니다.
읽을수록 가슴에 새겨지는 책이 좋은 책인 것처럼,
법정스님의 삶을 그려 낸 이 영화도 볼수록 일깨움을 주거든요.
법정스님은 종단의 기존관습을 타파하고 자유롭게 수행에 정진하여 참스님이 되셨습니다.
삶이란 본래 온전히 자신에게 부여된 것입니다. 가족이나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지요.
법정스님처럼 주어진 시간을 가장 자신답게 살다가 훌훌 떠날 수 있도록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그랬듯 당당하고 올바른 참인간으로 살겠다는 자세에 부족함은 없는지 반성부터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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