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친척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고층빌딩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강남의 한 호텔에서 열렸는데요,
일부러 멋을 낸 화려함보다는 답답함이 먼저 느껴졌습니다.
피아노 3중주팀의 연주를 시작으로 여유로운 예식이 끝난 후,
스테이크정식으로 이루어진 피로연이 시작되었습니다.
1인분에 10만 원 정도의 금액이었는데요,
코스 중간에 알맞게 익혀진 두꺼운 스테이크가 나오더군요.
너무나 단촐한 구성에 웬만한 사람은 양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스테이크를 옆에 넘기고 야채를 먹으며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나이프로 알맞게 잘라서 열심히 입에 넣는 모습들이 여기저기에서 시선을 잡는 순간,
육식이 이렇게 당연해도 되는지 홀로 의심하는 자신을 느꼈습니다.
옆 좌석에 앉은 분이 왜 고기를 안 먹는지 묻길래,
‘동물보호운동을 하기에 안 먹는다’고 대답했더니 말없이 고개만 끄덕입니다.
피로연 자리인만큼 더 이상의 추가 대화없이 각자의 음식을 먹었습니다.
돌아보니 육식을 안 한지 20년이 넘었더군요.
동물보호와 환경보호, 잔인성에 대한 양심의 거부가 행동으로 이어진 기간인 거죠,
때문에 이번 피로연이나 회식등 사회 전반에서 육식을 당연한 것으로 다룰 때마다,
늘 당연한 것에 대한 의심을 해 왔습니다.
뜻있는 학자들과 환경운동가, 동물보호운동가들이 공통으로 우려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인간이 과다한 육식을 지속하는 자체가 지구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가난한 나라에서는 먹을 음식이 없어 매년 수많은 생명이 굶어 죽고,
부자나라에서는 육식등 과한 음식으로 비만을 우려하는 이상한 행성이 지구입니다.
태양계에서 인간등의 생명이 살 수 있는 유일한 터전을 인간이 해치고 있는 겁니다.
닭을 간식처럼 먹고 소와 돼지를 일용할 음식으로 섭취하는 지금의 세태는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과도한 살생이라는 잔인성을 덜하고 지구환경을 구하는 방법은 육식의 자제라고 봅니다.
‘지나친 것은 미치치 못함과 같다’는 과유불급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지나친 채식위주도 문제가 있는 것처럼 모든 일에 지나침은 그 자체에 문제를 가지거든요.
현대병의 대부분이 지나친 육식과 음식의 과다 섭취에 원인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처럼 육식이 당연한 것으로 지속될 때 ‘증가된 수명은 곧 아픈 수명’이 될 것입니다.
역사를 떠올려 보면 인류의 여정이 참 다사다난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때문에 리처드 도킨스가 ‘산다는 것은 크나큰 특권’이라고 말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연한 것에 대한 의심이 없었다면 인류가 지금처럼 진보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을 해 봅니다.
육식이 대세로 자리잡은 현실속에서 오늘도 나는 의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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