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지식의 변천사를 보면 참 대단합니다.
하늘의 태양이 신이라고 믿었던 태곳적부터,
태양이 우주의 수 많은 별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이후 지금까지 말이죠.
문제는 지식의 양은 방대해 졌으나 지혜는 인류초기와 그다지 차이가 없다는 점이겠지요.
뇌의 용량은 분명히 커졌으나 그 격에 맞는 지혜는 담지 못한 형국이라고나 할까요~
유인원과 갈라져 오늘날의 인간이 되기까지 수백년간의 진화과정이 있은 후,
1만년 사이에 급속하게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되었음에도 말입니다.
개미처럼 바쁘게 일상을 살 뿐 하늘보는 여유조차없는 삶이 현대인의 모습일 겁니다.
당연한 듯 자리잡은 자본주의적 삶의 궤도를 태양을 도는 지구처럼 그저 돌고 있는 거죠.
그러다 문득, 우주의 일면을 보여주는 사진을 보면 지구 한 켠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인간이,
거대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우주 관점에서 얼마나 우스울까 느껴져 미소짓게 됩니다.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에서 허블우주망원경으로 촬영한 성운 NGC 6565의 모습입니다.
지구에서 약 1만 5200광년 떨어진 궁수자리(constellation Sagittarius)에 위치해 있는 이 별은,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죽어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수십억년동안 빛나다가 수명이 다하면 늙어 죽어가는 평범한 별의 마지막 한숨이 행성상 성운이라는 거죠.
1백년도 안되는 인간의 마지막 한숨은 불과 몇초지만 별의 마지막 한숨은 수만년이 걸린다고 하는데요,
수십억년에 이르는 별의 나이로서는 당연한 일이겠지요.
NGC 2818 허블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죽어가는 별의 모습
지구 삶의 근원인 태양도 앞으로 70억년 후면 수명을 다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더군요.
이처럼 죽어가는 별의 한숨을 보니 윤동주의 서시(序詩)가 떠오릅니다.
일제감옥에서 29세의 젊은 나이에 삶과 이별한 독립운동가로 민족의 존경을 받는 분이죠.
1941년에 창작된 '서시'는 시인의 좌우명이며 절명시로 암울한 시대 눈 맑은 이들의 좌우명이기도 한데요,
이 시를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하면서 행동은 반대로 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접하게 됩니다.
다수 정치인들이 '서시'를 사랑한다면서 행동은 이방원의 '하여가' 수준으로 하고 있거든요.
간도 용정촌의 윤동주 시비에 새겨져 있는 서시
고교시절 처음 접한 이후 늘 가슴속에 담긴 시가 되었습니다.
삶의 현실이 마음을 거역할수록 더욱 꺼내 읽으며 마음을 다 잡곤 합니다.
수십억년을 사는 별이든 불과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의 삶이든 제대로 된 삶이었다면,
그 마지막에 쉬는 한숨만큼은 회한이 아닌 삶의 찬란한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자유인 > 일상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스님 즉문즉설, 반성의 시간되다 (0) | 2015.09.25 |
---|---|
강아지풀, 익어가며 고개숙인 벼처럼~ (0) | 2015.09.11 |
뉴스타파, 가장 든든한 언론 (0) | 2015.08.26 |
찰리채플린 모던타임즈를 다시 보다 (2) | 2015.08.17 |
돈과 노동, 그리고 러셀 (0) | 2015.07.15 |
사전의료의향서 작성하다 (0) | 2015.07.10 |
순간의 선택이 5년을 좌우한다 (0) | 2015.06.15 |
석가탄신일에 다시 읽는 잡보장경 (0) | 2015.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