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인/일상에서

박근혜 무죄석방 서명현장의 두 노인


  초겨울 추위는 한낮에도 기세가 등등합니다.

번화가 전철역 앞에는 바삐 오가는 사람들로 번잡합니다.


한 모퉁이에 탁자를 앞에 둔 늙수그레한 사람들 몇몇이 모여 있습니다.

현수막을 흘끗 보니 박근혜 무죄석방 서명운동현장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지만 서명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침 기다리는 버스가 먼 정거장을 지나고 있어 오랫동안 현장을 지켜봅니다.


그때 운동원들과 고성대응하던 한 노인이 갑자기 탁자로 다가가 서명을 시작합니다.

낮술을 한 건지 몸을 제대로 못 가누며 다투다가 일순 돌변한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현장을 보자 외면하지만 일부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요,

조용하던 운동원 중 한 노인이 오가는 사람들을 잡으며 서명을 재촉하기 시작합니다.

자신과 같은 연배의 노인들만 타겟으로 삼는 모습에 흥미를 갖고 지켜보게 됩니다.





  갑자기 백발의 운동원 노인이 고성까지 지르며 서명운동의 열기(?)를 이어갑니다.

“박근혜는 죄가 없는데 억울하게 갇힌 것이며 문재인과 손석희는 사기꾼**”이다.


나아가 그들의 빛바랜 레퍼토리도 어김없이 나오더군요.

“박정희 덕분에 밥을 먹게 되었는데 그 덕을 모른다”고 강변합니다.


그러한 주장을 하면서 한 노인을 붙잡고 서명을 권유하지만 뿌리침을 당합니다.

운동원의 서명을 거부한 노인이 서명현장과 약간 떨어진 정류장에 오자 한마디 합니다.


“죄가 없는데 왜 갇혔겠어, 늙은이들이 저러니까 욕을 먹는 거지”





  두 노인의 주장을 접하면서 노년의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최소 70년 이상의 삶을 영위했을 두 노인이 가진 지혜의 폭이 가슴에 전달되었기 때문이죠.


70살이면 ‘마음이 닿는 대로 살아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를 의미합니다.


살면서 온갖 풍파를 이긴 내공이 지혜로 승화되어 삶에 나침판이 되어주기 때문인데요,

박정희 부녀에 세뇌된 노인과 그것을 간파한 한 노인의 지혜가 가히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아마도 그 운동원은 정신의 천지개벽이 없는 한 그렇게 살다 그렇게 스러져 갈 것입니다.

삶이 끝나는 순간 자신의 잘못을 아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 살던 모습대로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서명운동현장의 이면에서 느껴지는 강한 안타까움을 버리기 어렵습니다.





  노인에 관한 유명한 아프리카 속담이 있습니다.

‘노인은 지혜 가득한 도서관이다, 그래서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이 불타는 것과 같다.’


인터넷을 보면 노인을 비하하는 각종 은어가 남발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경로사상이 감소하는 것은 세태의 변화도 있지만 일부 노인에게도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삶의 지혜는 갑자기 쌓인 일확천금이 아니라 서서히 쌓이는 통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oecd 노인빈곤율이 최고를 기록하는 지금, 필요한 것은 심신의 풍요로움이라는 점에서,

그 운동원 노인들이 잠시라도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