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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역사사색

차베스, 미국과 맞장 뜬 사나이 암에 지다

 

  남미 좌파의 대부로 세계 초강대국 미국에도 전혀 기죽지 않았던 정치인,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대통령이 5일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오늘 장례식이 거행되었네요.

 

베네수엘라,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아주 먼 나라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빈곤과의 전쟁'을 해 온 차베스의 행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세계은행 통계를 보면 그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1998년 전체 국민의 50.4%에 이르던 빈곤층은
2006년 36.3%로 감소했고, 취임 초 천명당 20.3명이던 영아사망률은 2011년 12.9명으로 감소했습니다.
중등학교 진학률은 1999년 38%에서 2010년 72%로 올랐고, 문맹률은 2001년 7%에서 2007년 5%로 떨어졌습니다.

 

 

 

 

 

 

  베네수엘라의 보수기득권층과 우리나라의 보수언론은 그를 빈민층에 영합한 포퓰리스트라고 비아냥거리더군요.
과거 남미의 포퓰리스트들은 경제개혁도 못하고 국민의 빈곤을 전혀 해결하지도 못했는데 말이죠.

 

상층 10%가 전체 국가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81년 21.8%에서 1997년 32.8%로 높아진 상황에서,
80년대 후반에 밀어닥친 신자유주의정책 실패로 극빈층은 11%에서 36%로 치솟아 차베스의 지지세력이 됩니다.

그 힘으로 작년 10월 임기 6년의 4선에 성공했지만, 시작도 못하고 암에 스러져 버린 거죠.

 

  오일사회주의로 빈곤을 절반으로 줄이고 빈부격차를 좁힌 사회복지프로그램의 실천자였기에,
사망한 이후 그에 대한 국민들의 충성과 관심, 애도열기는 더욱 뜨거워 지고 있습니다.

 

 

 

 

 

  58세라는 너무도 아까운 나이에 다수 국민의 기대를 접고 떠난 점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독재자라고 하지만, 세상 그 어느 독재자도 국민의 빈곤해소를 위해 그처럼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독재권력에 집착해 기득권위주의 정책을 펴온 대다수 독재자들은 국민의 혁명으로 몰락했거든요.

 

그런점에서 볼 때 차베스가 집권 기간 14년동안 이루었던 결과에 다시 마음이 갑니다.
빈곤층은 50%, 극빈곤층은 70% 감소했으며, 거의 무료인 대학 입학자 수는 2배 이상 증가했고,
수백만명이 생애 처음으로 의료 서비스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빈곤층, 유색인종, 장애인, 젊은이등을 대변하여, 진정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한 거죠.
소수 기득권 부자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가던 오일머니를 어려운 국민들을 위해 사용한 정책을 펴면서요.

 

 

 

 

 


  우고 차베스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차베스는 1954년 7월28일 베네수엘라 바리나스주 사바네타에서 교사인 부모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차베스는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한 이후 정치에 관심을 보이게 됩니다.

1992년 2월 동료 장교들과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후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2년간 옥살이를 합니다.


이후 1998년 대선에서 56%의 지지율로 처음 대통령이 되었고 2000년 대선에서 60%의 지지율로 재선됩니다.

2002년 4월11일 유혈사태로 얼룩진 반정부 시위와 일부 군부세력의 반정선언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축출됐지만,
국제사회의 비난과 그의 복귀를 바라는 지지자들에 힘입어 이틀만에 대통령직에 복귀하는 우여곡절도 있었죠.
당시 그는 자신의 반대 세력과 대화에 나서겠다고 약속하는 동시에 반정 세력을 지지했다며 미국을 맹비난합니다.

 

 

 

 

 

 


  2006년 유엔연설에서 부시 미국대통령을 '악마'라고 지칭하여 연설내용보다 악마라는 표현이 더 유명세를 탔었지요.

 

대통령 연임제한 규정을 철폐한 국민투표에서 승리하며 종신 대통령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이후,
2006년 12월 대선에서 63%의 지지율로 3선 성공, 지난해 10월 54.4% 지지율로 4선에 성공하게 됩니다.

 

 

 

주한 베네수엘라 대사관에 마련된 분향소

 

 

독보적 카리스마를 가졌던 차베스, 그가 떠난 베네수엘라의 미래가 어디로 흐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분명한 사실은 차베스의 유산을 기억하는 다수 국민의 지지가 있는 한 빈곤해소정책등은 지속될거라는 거죠.

 

다만 시신을 방부처리해 군사박물관에 영구보존한다는 방식은 왠지 동의하기가 힘드네요.
베트남 독립영웅 호치민도 자신은 화장을 원했지만, 후임자들이 영구보존하는 방식으로 결론내렸었거든요.

 

 

 

 

 


"가난한 이들을 이해하는 지도자였다. 힘없는 이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힘썼다."
- 미국 민주당 호세 세라노 뉴욕주 연방하원의원이 트위터에 올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