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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도서리뷰

권력과 인간 -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문학동네 까페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되었던 정병설 교수의 강의를 모아서 책으로 나왔네요.
먼저 저자 소개를 보니 역사학교수가 아니고 국문과 교수라서 의외라는 생각이 앞서더군요.
하지만 읽어 갈수록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꼼꼼한 사료대조를 통한 강력한 주장에 감탄하게 됩니다.

조선왕조의 명군으로 불리는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의 죽음은 한국사에 있어 보기 드문 비극이죠.
아버지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일주일이나 가둬서 죽인 참으로 경악할 만한 사건이거든요.
그만큼 충격적인 소재다 보니 지금까지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 소설로 재탄생하며 많이 알려져 왔지요.

문제는 사도세자의 사건은 대중적으로는 알려졌지만 학문적으로는 깊이 논의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즉 사도세자가 미쳤다는 '광증설'과 당쟁의 싸움에 휘말렸다는 '당쟁 희생설'정도의 논의가 있어 왔죠.
이 두가지 설 모두 학문적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전제하에서 저자의 논의가 진행됩니다.
때문에 이 책은 두 설이 주장하는 내용을 세밀하게 분석한 첫 성과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저자는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저술인 [한중록]을 바탕으로 광증설에 동의합니다.
동시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이재난고, 현고기등의 여러 사료를 폭넓게 분석하며 주장을 이어가죠.
저자의 꼼꼼한 분석을 읽다보니 광증설에 무게가 팍팍 실리는 느낌이 들더군요..^^
당쟁희생설을 주장하는 분들은 더 꼼꼼하고 확실한 사료분석으로 대항해야 할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여러가지 사료에 기록된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배경과 원인을 탐구하는 것도 있지만,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의 성장과정과 성격, 정조가 부친과 자신을 위해 벌인 역사왜곡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두 차례의 전쟁 후 피폐해진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며 어떤 왕보다 성실했던 영조와 정조!
자기 자신과 남에게도 엄격하며 사치가 아닌 소박한 삶을 일관했던 두 왕의 깊은 아픔을 엿봤거든요
두 왕이 찬란하게 빛난 태양이라면 사도세자는 그들에 가려진 어두움이 분명했기 때문이죠.

특히 어린 시절부터 성장한 이후에도 아버지 영조의 사랑을 받지 못해 정신이 망가져 버린 사도세자!
그의 아픔은 개인의 비극일 뿐만 아니라 조선이 남긴 시대의 아픔으로 오래 기억될 듯 하네요.



  '미쳤어도 아들인데 아버지가 친아들에게 어떻게 그처럼 잔인한 죽음을 안길 수 있을까?'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부자관계의 내막을 아시고 싶은 분들은 꼭 읽어 보세요.
읽을 때는 어떤 드라마보다도 재미있고 책을 덮은 이후에는 여러가지 사색꺼리를 제공해 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