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인 동시에 상실의 계절인 가을은,
전쟁과 평화의 두 얼굴을 가진 로마의 신 야누스를 닮았습니다.
로마 중심부에 있던 야누스 신전의 문은,
평화로운 시기에는 닫혀 있고 전쟁중에는 열려 있었다는데요,
가을이 주는 느낌과 어쩜 그리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이 가을, 마음에 내려앉은 책이《기탄잘리》입니다.
기탄잘리는 '신에게 바치는 송가'라는 뜻으로
동양인 최초로 191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시집입니다.
1861년 5월 7일 캘커타의 명문 브라만 가정에서 막내로 태어난 타고르는,
작가이며 열성적인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다가 1941년 8월 7일 캘커타에서 세상과 이별합니다.
타고르는 일제 압제하에 있던 우리나라 국민에게 '동방의 불꽃'이라는 희망의 메세지를 전해
조선민족에게 희망과 감격을 안겨준 시인이라 친근함을 느끼는 분들이 적지 않죠.
햇빛좋은 가을날의 오후 사람가득한 전철안에서 다시 만난 기탄잘리!
베에토벤의 운명교향곡을 처음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시집은 인간과 신의 관계를 사랑하는 연인의 관계로 묘사한 품격높은 시들을 담고 있는데요,
삶과 죽음에 관한 깊은 명상을 보여주고 있어 번잡스런 일상을 벗어나게 하는 강한 마력을 가졌습니다.
W. B. 예이츠는『기탄잘리』서문에서,
'이 서정 시편들은 내가 온 일생 동안 꿈꾸어 왔던 세계를 전개하고 있다.'고 극찬하고 있더군요.
그의 서문에 깊이 동감하면서 이 가을, 모든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기탄잘리에 수록된 100여편의 시들이 모두 경건하고 깊은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가장 마음에 담긴 시를 소개합니다.
'죽음이 당신의 방을 두드리는 날이면
당신은 그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저는 이 생명이 가득찬 잔을 드리겠나이다
저의 온 가을날과 여름밤의 향기로운 포도의 수확을 남김없이,
바쁜 내 일생동안 번 것과 주운 것을 남김없이..
죽음이 저의 문을 두드려 저의 인생이 끝나는 날이면
그 앞에 서슴지않고 내놓겠나이다.'
아래 싯구들은 여러 편의 시에서 해 둔 '밑줄 쫙' 부분을 가져 왔습니다.
읽으면서 가슴에 더 와닿는 구절이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군요.
시의 마지막 뜻은 임을 지향하는 일이외다
하지만 이 몸의 설움만은 절대로 이 몸 스스로의 것이외다.
이 대지를 보는 눈이 잃어지는 때면 그 날이 오리라는 것을 내 알고 있나이다
그러면 인생은 고요히 하직하며 이 내 눈에 마지막 장막을 드리우리다.
그리고 이 내 생을 사랑하는 까닭에 죽음도 또한 사랑해야 할 줄 아나이다.
내 여기서 떠날 때면 내 본 것 이상 넘을 것이 세상에 없다는,
이 말이 작별의 인사가 되겠나이다.
임에게 한번 인사를 올림으로서 내 주여, 온갖 내 감각이 손을 뻗쳐 임의 발 앞에 있는 이 세계를
어루만지게 하여 주소서
밤이나 낮이나 고향이 그리워 애타며 산속의 보금자리로 날아 돌아가는 학의 무리와도 같이
온 이내 생명으로 하여금 임께 한번 인사를 올림으로써 영원의 안식처로 항해를 하게 하여 주소서~
이처럼 깊고 충만한 사색으로 가득찬 삶이었다면 기꺼이 죽음과 만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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