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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도서리뷰

백범일지

 

  세월호진상규명을 둘러싼 특별법문제로 정국이 혼돈스럽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더욱 갈망하는 인물이 영웅인데요,
사전상 영웅은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말합니다.

 

최근 이순신장군이 영화 '명량'으로 주목받고 있는데요,
근현대사를 둘러보면 영웅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아쉽더군요.


하지만 우리 민족이 제대로 대우하지 않아서 그렇게 보일 뿐 영웅은 있었습니다.
바로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선생이죠.

 

 몇년전 독립기념관부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광복 제67주년과 독립기념관 개관 25주년 기념행사로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독립운동가를 알아보니 김구선생이라는 결과가 나왔더군요.

 

선생을 생각하며 자서전 [백범일지]를 다시 펼쳤습니다.
상하권 총 450여페이지로 구성된 이 책을 요즘에 읽어보니 더 와닿더군요.

 

 

 

 

상권은 김구선생이 52세 되던 해인 1928년 3월에 상해 임시정부청사에서 집필하여 1929년 5월에 완성했습니다.
당시 열 살과 여섯 살된 두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살아온 인생 역정을 알려주려는
마음을 담은 책으로 유서를 대신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권은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1941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1947년까지 6년에 걸쳐 출간했는데요,
미주와 하와이 동포를 염두에 두고 민족 독립운동에 대한 경륜과 소회를 유언 형식으로 쓴 책이죠.

 

출생부터 명성황후 시해에 분노하여 일본인 장교를 살해한 일, 그로인한 옥살이와 탈옥,
임시정부 수립과 독립운동, 미군정의 요청으로 임정주석이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 귀국할 때까지,
선생의 행적을 보면서 후손으로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어머니 곽낙원여사

 

  책을 보노라면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에 대한 다양한 일화를 볼 수 있습니다.
곽여사는 학교를 안 다녀 글도 몰랐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과 굳건한 가르침은 한치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당신의 생일잔치에 없는 돈을 쓰지말고 독립운동에 사용하라는 부분에서 가슴이 울컥하더군요.

 

일제 식민지가 된 후 선생은 호를 백정의 백자와 범부의 범자를 사용하여 백범(白凡)으로 바꿉니다.
 "우리나라가 완전한 독립국이 되려면 조선의 백정(白丁), 범부(凡夫)들이라도 애국심이 현재의 나 정도는 되어야 하겠다"는
바람 때문이었지만, 일본의 압제하에 애국심마저 가라앉은 동포들은 독립운동에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합니다.

 

'임시정부의 집세가 30원, 심부름꾼 월급이 20원 미만이었으나 이것조차 낼 힘이 없어서
집주인에게 여러번 송사를 겪었다'는 기록을 볼 때면 본국동포의 지원이 얼마나 전무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임정수립시 도산선생에게 문지기를 청원했으나 경무국장으로 발탁된 후 주석이 되어 임시정부를 책임지는 동안, 임시정부의 모양새나마 유지하려 애쓴 선생이 '상거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은 동포의 외면이었던 거죠.

 

 

김구선생과 윤봉길의사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생은 독립운동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기 위해 이봉창, 윤봉길의사와 일대 거사를 도모합니다.

선생이 상하이 홍구공원 거사 당일, '윤봉길의사와 마지막 아침을 같이 하며 기색을 살펴보니,
그 태연자약함이 농부가 일터에 나가려고 넉넉히 밥을 먹는 모양과 같았다'며 깊은 신뢰를 보여주고 있더군요.

 

본국과 만주의 지원이 끊어진 가운데 계속된 임시정부 운영의 어려움은,
윤봉길의사 의거후 중국인 친구들의 동정과 미주동포의 후원으로 활동하는 비용에는 곤란이 없어지게 됩니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열린 일본군 전승 축하 행사에 폭탄을 던진 윤봉길의사의 의거는
극심한 침체에 빠져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기사회생시킨 전기가 되거든요.

 

 

인천대공원 내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

 

의거에 크게 감동한 장개석 중국 총통은
"중국의 100만 대군도 못한 일을 조선 청년이 해냈다"며 임시정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1945년 일제 패망 때까지 임시정부 후반기 투쟁이 계속될 수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수년간 광복군을 준비하여 국내침공작전을 준비하던 중 발생한 일본의 항복은,
선생에게 기쁜 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었습니다.

힘들게 임시정부를 유지했을 뿐 이번 전쟁에 특별히 공헌한 일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발언권이 약하리란 선생의 염려처럼 미소 양국에 의한 남북분단이란 민족의 비극을 맞게 됩니다.

 

때문에 '나의 70평생을 회고하면 살려고 산 것이 아니요, 살아져서 산 것이고
죽으려고 하여도 죽지못한 이 몸이 필경은 죽어져서 죽게 되었다'는 소회를 피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책으로서 [백범일지]는 분량도 많지 않고 쉽게 읽히며 무엇보다 참 재미있습니다.
당시 시대상과 선생의 행적, 독립운동의 어려움과 각 세력간의 다툼등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거든요.
많은 국민들이 이 책을 접하고 선생의 나라사랑 정신을 깊게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비통한 일은 70세의 나이로 해방된 조국에 돌아온지 불과 4년만에
같은 동포인 육군 소위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하신 일입니다.

 

"우리도 어느 때 독립 정부를 건설하거든, 나로 하여금 그 정부청사의 뜰도 쓸고, 창도 닦는 일을 해보고 죽게 해달라"는
꿈을 갖고 평생동안 독립운동을 지휘해 온 선생의 죽음이라 민족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단독정부수립이후 친일부역자들이 주류가 되어 지금에 이르다보니,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아 마땅한 김구선생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진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선생에게 뜻깊은 도시 인천 감리서 터 - 쓰레기장이 된 기가막힌 현실


♣ 나의 소원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며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 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청년제군에게 바라는 것은 자기를 잊지말란 말이다.
우리의 역사적 이상, 우리의 민족성, 우리의 환경에 맞는 나라를 생각하란 것이다.
밤낮 저를 잃고 남만 높여서 남의 발뒤꿈치를 따르는 것으로 장한 체를 말라는 것이다.
제 뇌로, 제 정신으로 생각하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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