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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역사사색

김무성, 이명박 이승만옹호 주장 유감

 

  역사를 볼 때 늘 떠올려지는 사실이 있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정의를 위해 올곧게 사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처럼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점입니다.

 

흔히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못하는 것'처럼
온갖 죄악을 저지른 자도 권력을 갖고 강력한 조직을 갖는 한 처벌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금의 거리낌없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죄악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
양심에 견줘 가리는 것이 많은 올곧은 사람보다 승리를 향한 유전적 집착이 강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늘 승자의, 승자에 의한, 승자를 위해 쓰여져 왔다고 해도 지나침은 없을 겁니다.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잡초가 가꾸지 않으면 잘 자라지 못하는 잔디밭을 순식간에 뒤덮어 버리는 것처럼,
부정이 정의보다, 배신이 지조보다, 악한 기질이 선한 덕목을 이기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대로 둬도 번성을 거듭하는 잡초와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의 여러 기질들은 정말 많이 닮아 있습니다.


반면 언제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잔디처럼 양심과 올곧은 기질은 늘 마음의 관리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보통인들의 삶에서 가장 편한 것은 이방원이 정몽주를 회유하려던 '하여가'처럼 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그렇게 사는 것이 편한 것을 알면서도 양심에 따라 올곧게 살아온 분들로 인해 이만큼이나 세상은 정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제시대에는 친일파로, 독재시절에는 정권에 빌붙어 권력과 금력을 불리던 사람들이 비정상적으로 설쳐대 왔음에도 말이죠.

 

  지난 17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대통령이라며 국부로서 예우해야 한다'고 주장했더군요.
나간 김에 더 나아간 건지, 그를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의 출발'이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지난 20일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과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야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이승만에 대한 의견은 누구나 표출할 수 있지만 집권당의 대표나 전직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주목하게 되더군요.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대통령일 뿐, 국부라거나 긍정적으로 보기에는 흠결이 너무나 많은 인물입니다.

 

 

 

 

지난번 제 블로그에 올렸던 글처럼,
전쟁전에는 친일파등용 및 반민특위 와해, 김구선생 암살의 배후로 친일청산이 아닌 독립운동 애국자를 핍박하고,
6.25기간에는 본인이 도망간 서울을 사수한다며 거짓방송을 일삼고 한강철교를 폭파하여 무수한 시민을 죽게 한 것도 부족해서,
반성은 커녕 선량한 시민들을 빨갱이로 몰며 부정선거와 독재의 결말로 하야 후 하와이에서 죽은 정치인일 뿐입니다.

 

특히 6.25직후 이승만정부는 국민들에게‘곧 북한군을 격퇴할 테니, 피난 가지 말고 안심하라’고 홍보하면서,
자신들은 서둘러 도망갔는데요, 학생들에게는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하면서 도망간 세월호 선장과 판박이라 하겠습니다.

 

중국에서 일제와 피흘리며 고투하는 김구선생등의 독립운동가와는 달리 먼 미국에서 편하게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임정의 수반자리를 놓고 권력투쟁하는 추악함을 드러낸 인물이었으니 권력에의 집착으로 독재로 이행한 것은 당연했겠죠.

 

 

 

 

독립운동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었고, 초대대통령직을 워싱턴대통령처럼 사심없이 국가를 위해 수행한 것도 아니었으며,
6.25전쟁시 공산주의 분쇄는 커녕 가장 먼저 도망갔을 때 최소한의 양심이 있었다면 물러났어야 마땅한 인물일 뿐입니다.

그런 인물을 국부니 건국대통령이니 하며 판을 키우려는 세력의 의도가 무엇인지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승만의 잘못중 가장 큰 것중의 하나가 친일파 척결은 커녕 친일파 등용으로 그 후손들이 번성하게 하여
독립이나 애국이라는 가치를 완벽하게 혼돈시킨 사실에 있기 때문인데요,
이승만 국부 운운한 김무성 대표도 부친의 친일파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부분이 큽니다.

 

 

<매일신보> 1941년12월 9일자에 보도된 기사

 

위 매일신보에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김무성의 아버지 김용주는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이 밀리던 1941년 '황군(일본군)에게 위문전보 보내기'를 주도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친일전력에도 불구하고 해방이후 주일공사, 방직회사와 해운회사 운영자, 경총 초대회장까지 지냈다고 하니,
후손들의 번성은 당연한 귀결이 되었을 겁니다.

 

적시에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아픔이 줄어들기는 커녕 반복, 확대되는 현실을 보면서 답답함을 줄이지 못하겠습니다.
해방전 광복군이 서울에 먼저 진군하여 동포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었다면 이후 역사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점에서
깊은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