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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일상에서

돈, 그리고 양심


  트럼프와 김정은, 두 crazy guy의 말 전쟁을 보면서,

삼성 이재용 재판과 장충기 문자사건에 주목하게 됩니다.


오로지 출세와 사익을 위해 양심을 거침없이 내버린 행태를 보면서,

오래전 한 지인에게 들었던 말이 떠오릅니다.

‘대한민국은 돈만 있으면 정말 살기 좋은 나라야’


분명한 것은 돈이 많으면 없는 것보다는 살기 편하다는 사실일 겁니다.

건물주가 꿈이라는 젊은 층의 세태를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요.


태어난 생명은 단 하나의 예외없이 모두 스러져 갑니다.

그것은 생명가진 이들이 감내해야 할 지극히 평등한 삶의 질서이기 때문이죠.


그 한계 속에서 돈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입니다.


하지만 그 행운이 양심과 어긋나게 활용된다면 만인에게 축복받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한정된 재화인 돈이 소수에게 독점되어 그들만의 세계에서 희희낙락 떠돈다면 말이죠.





  생계를 위해 수면도 줄여가며 돈을 벌려는 많은 사람들을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돈을 더 벌려는 욕심으로 건강을 해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번 돈으로 잃은 건강을 되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깊은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최소한의 세금도 납부하지 않고 박근혜의 권력을 이용하여 재벌승계를 도모한 재벌 상속자 이재용과,

충성맹세등 갖가지 반대급부를 제공하며 온갖 청탁을 일삼은 언론기레기들을 보면서 사익을 위해 양심을 시궁창에 내던진 얍삽한 인격의 전형을 보게 됩니다.


문제는 그 행태가 그들만의 것인지, 빙산의 일각이 드러난 것뿐인지는 아직 모른다는 겁니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도 돈은 모두를 달리게 만드는 출발선이자 종착점이었습니다.


심각한 것은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등 각종 저항에 맞서 수정하며 자리잡은 이 시점에서도,

돈은 모든 사회 모든 국가에서 최고의 권력, ‘돈교’로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돈교의 숭배자들은 다다익선이라는 절대교리에 순종하며 자발적 비굴의 삶을 살아갑니다.


때문에 돈과 양심의 일상적 대결에서 일방적으로 돈이 승리하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사실은 당연한 것이 역사를 진보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생사가 평등한 인간이 삶의 과정에서 개체의 능력에 따라 불평등한 삶을 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불평등이 개인의 차이가 아닌 혈통의 차이가 원인이라면 더욱 잘못된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은 계층이동이 거의 불가능한 사회라는 중증의 질병국가가 되었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사회’는 소수부유층만의 세계로 전락하는 지름길에 불과합니다.


'소수에게 이로운 것이 모두에게 이로울 수는 없지만, 모두에게 이로운 것은 소수에게도 이롭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정된 부의 공정한 분배와 모두가 건강하게 숨 쉴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바로 그렇습니다.

모든 거래의 매개체가 돈이라는 점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돈과 양심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기꺼이 양심이 선택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양심을 선택한 분들이 돈을 선택한 자들보다 더 잘사는 사회가 꼭 되어야만 하는 이유라 하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수십 년 적폐가 쌓여있는 대한민국이 가야 할 도착지는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적폐세력등 기득세력은 온갖 금력과 영향력을 이용하여 그 길을 막을 것이 당연합니다.

그들이 누려온 혜택이 크면 클수록 저항도 크다는 물리학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종교재판에서 겨우 처벌을 면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습니다.

양심이 돈에 이기는 사회를 만들려면 ‘그래도 양심이 우선이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과 북한공산왕조가 국익을 위협하는 지금 공정과 평화는 향기로운 양심만이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6.25전쟁시 가장 먼저 도망간 이승만일당의 후예들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답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