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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도서리뷰

술탄과 황제

 

  몇년전에 비잔틴제국의 흥망성쇠를 다룬 두꺼운 세 권의 책을 읽은 적이 있었지요.


그 책을 읽으면서 당시 동로마(비잔틴)제국 역사의 장대한 흐름에 몰입되어 세월을 잊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번에 접한 [술탄과 황제]는 전 국회의장 김형오의 저술로 오랜 각고의 노력이 빛나는 저서입니다.


정통 역사학자가 아닌 아마츄어 역사가의 5년에 걸친 각별한 열정과 고뇌가 책갈피마다 담겨 있거든요.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역사적 사실과 저자가 수집한 다양한 자료로 비잔틴 제국 최후의 나날을 보여 줍니다.

 

책의 주인공은 오스만 튀르크의 술탄 메흐메드 2세와 비잔틴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입니다.
술탄 메흐메드 2세와 비잔틴 제국 최후의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치열한 전쟁과정이 축이지요.

 

 

 

 

 

 

  1장에서 마지막 총공세를 펼친 나흘간의 기록을 흥미진진한 대형 영화처럼 묘사하고 있고,
2장에서 황제의 일기와 이에 대한 술탄의 비망록이라는 구성으로 전쟁에 임한 두 사람의 고뇌를 보여 줍니다.
3장은 559년이 흐른 2012년 5월, 비잔틴제국 멸망의 현장 이스탄불을 찾은 저자의 느낌과 자료를 제공합니다.

 

황제의 일기를 읽은 술탄이 비망록을 적어나가는 방식으로 전체 구성의 틀을 설정한 부분도 독특하지만,
현지 답사 5번과 47일간 현장에 머물면서 발로 취재하고 모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참 흥미롭게 전개하더군요.
한번 잡으면 다른 일은 스케줄에서 밀릴 정도의 깊은 재미와 몰입을 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만 패자의 기록까지 남기고 싶은 저자는 두 사람의 내면으로 빙의한 듯 써내려 갑니다.
때문에 황제의 일기와 그에 답한 술탄의 비망록을 읽다보면 마치 현장에 함께한 듯한 착각을 하게 되더군요.
두 사람의 리더십과 독실한 신앙, 두 제국의 현실, 가족관계등의 인간적 고뇌를 현실감있게 그리고 있거든요.

 

예언자의 뜻대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려는 술탄과 천년 역사를 지닌 제국을 지키려는 황제의 치열한 각축전을 구경꾼의 시각으로 지켜 보면서 역사가 주는 가르침을 다시 되새겨 보게 됩니다.

 

 

 

 

 

  거의 두달 가까이 콘스탄티노플이 포위공격당함에도 같은 기독교권 국가들이 원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같은 신에 대한 신앙보다는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었던 기독교 국가들의 냉정한 현실인식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역사의 교훈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더군요.

 

 

 

 

 

 

  1453년 5월 29일, 마침내 콘스탄티노플은 함락되고 1400년간 지속된 로마제국은 멸망하게 됩니다.
오스만 튀르크에 의한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동양의 이슬람문명에 의해 서양의 기독교문명이 정복되고,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게 한 시대적 사건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부여되어 있지요.

 

두 사람 모두 적장자가 아니었음에도 형들의 죽음으로 술탄과 황제가 된 운명적 과정도 예사롭지 않지만,
콘스탄티노플을 세운 콘스탄티누스대제의 어머니와 이름이 같은 황제의 어머니 이름에서도 운명을 느낍니다.
즉 엘레나라는 이름을 가진 두 어머니의 아들 둘이 한명은 창업의 황제, 한명은 패망의 황제가 되었거든요.

 

 

 

 

 

 

  특히 저자가 이스탄불을 찾은 2012년 5월의 그 날과 콘스탄티노플이 멸망한 날의 요일이 같다는 점,
이 책을 위한 자료를 준비하면서 저자가 느꼈었던 운명론적 시각을 독자의 입장에서도 느끼게 됩니다.

 

이번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심사로 '2월의 읽을 만한 책' 역사부문 단독추천도서로 선정됐더군요.
황제의 일기장과 관련된 한 곳 외에는 역사적 사실, 팩트에 충실했던 저자의 노고에 대한 보답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비잔틴제국의 멸망을 다룬 책은 많았지만, 이 책처럼 독특하게 구성한 책은 없었다고 합니다.
유럽역사의 일대사건을 동양의 역사 아마추어 작가가 저술한 책이라는 한계가 있을 수 있겠지만,
[로마인 이야기]를 평설한 시오노 나나미의 책이 다수 번역된 것처럼 외국어로 번역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역사적 사색과 동시에 즐거운 읽을거리로도 부담없는 책이라고 보아 널리 일독을 권합니다.
역사책 읽는 참다운 재미가 이런 거구나, 많이 느끼시게 될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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