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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역사사색

광해, 정말 아까운 왕

 

  최근 조선 15대 왕 광해군을 다룬 사극 '왕의 얼굴'이 인기더군요.


드라마다 보니 각색부분이 적지않아 즐겨보는 편은 아닌데요,
광해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곤 합니다.

 

역사학자들의 관점에 따라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립니다.

 

인조반정의 명분이 된 '폐모살제'를 자행한 폭군이라는 주장과
16세기 명청교체라는 대륙의 정세변화에 현명하게 대처한 군주라는 주장입니다.


저는 후자인데요,

조선조 27명의 왕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능력을 가진 왕에 속한다고 보기 때문이죠.


가장 무능한 선조와 인조의 중간에서 가장 노력했던 왕이었기에 더욱 그런지도 모릅니다.

 

  광해의 아버지 선조를 다룬 책을 보면 볼수록 매우 무능하고 비겁한 왕이라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백성과 나라를 버리고 가장 먼저 도망간 왕이었거든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도망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 북진하는 왜군이 놀랄 정도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왜군들의 경우 나라가 망하면 도성에서 최후까지 싸우던 수장이 할복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할복은 커녕 수장이 보이지도 않는 황당한 상황에 놀랄 수 밖에 없었겠죠.

 

선조가 도망간 빈자리를 훌륭하게 채운 사람이 세자 광해군이었고 그에 대한 백성의 지지는 높아집니다.
후일 인조반정이 일어나 이에 반대하는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많은 백성들이 환호했다고 합니다.

 

전쟁후 선조와 주변세력의 위협으로 폐세자의 위협에 처했던 광해는 선조의 죽음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두차례에 거친 왜군의 침입으로 국난을 겪은 광해는 더 이상의 전란을 막기위해 실리적 중립외교를 펼치는데요,
명나라를 대를 이어 사대하는 주류양반사회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결국 반정의 명분이 됩니다.

 

 

영화 명량

 

  반정의 또 다른 명분이었던 '폐모살제'도 사실 당시의 왕가에서 드문 일도 아니었습니다.


현군으로 이름높은 당태종도 부친을 쫓아내고 형제를 도륙하여 황제에 즉위했고,
조선의 태종도 왕자의 난을 비롯한 무수한 정적살상후 즉위하여 훗날 세종이 이룬 업적의 기반이 되었거든요.

 

하지만 광해는 순수한 자신의 능력으로 왕이 되었지만 서자로서 차남이라는 점이 '아킬레스건'이었습니다.
때문에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강경파의 손을 들어준 점이 몰락의 열차에 탑승하게 된 건지도 모릅니다.

 

 

 

 

  광해를 몰아낸 인조는 광해의 중립외교 대신에 명과의 의리를 중시하는 도덕외교를 천명했고,
결국 1627년의 정묘호란과, 1636년의 병자호란을 겪으며 삼전도에서 굴욕적으로 항복하게 됩니다.

 

청태종을 향해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예를 올리는 항복의식인데요,
삼배구고두는 여진족이 천자를 뵈올 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매우 치욕적인 의식이죠.

 

국토는 왜군의 말발굽아래 유린되고 백성은 도륙되는 전란을 당해 가장 먼저 도망간 선조와,
대륙의 정세변화를 알지 못하고 스러지는 명나라에 대한 충성에 몰입되어 비극을 자초한 인조와 비교할 때
리더로서 광해가 보인 뛰어난 판단능력은 가히 압도적이라 하겠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E.H.카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국가나 조직의 리더가 갖춰야 할 필수요건은 과거와 현재를 차별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국난을 당해 최선을 다해 대처하고 이후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실리외교를 펼친 광해와
미흡한 안목으로 비겁하고 무능하여 군왕으로서의 자질조차 갖추지 못한 선조와 인조는 극과 극입니다.

 

그처럼 국가와 백성의 안위를 지키지도 못한 무능한 조선왕조는 영정조시대 반짝이는 한 때를 지난 후,
내리막길을 달리다 끝내 일본에 무릎끓게 됩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역사에 가정은 의미없지만, 광해가 적자였다면 능력으로 볼 때 조선조 훌륭한 왕의 한명으로 남았으리라는 점에서,
광해가 정말 아까운 왕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처럼 중요한 시기에 당쟁과 파쟁의 늪에 빠져 국가와 국민의 비극을 외면한 주류양반들처럼,
이 시대의 많은 정치인들도 국가와 국민의 행복보다는 자신의 안위에 무척 바빠 보입니다.

 

특히 세월호 참사에도 7시간이나 나타나지 않은 대통령과 그녀가 어디에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비서실장,
그 기막힌 사실을 외면하는 집권세력과 언론등의 기득권세력을 보면서, 국민의 마음을 정말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