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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역사사색

나폴레옹 유언장 사본, 5억원에 낙찰

 

  나폴레옹의 유언장 사본이 5억 1천만원에 낙찰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나폴레옹의 말이 떠오르네요.

 

귀족이 판치는 프랑스에서 본토도 아닌 코르시카섬 출신으로,
알렉산더대왕이나 로마의 카이사르와 비견되는 군사, 정치적 천재로 성장한 군인정치가!


마침내 프랑스의 황제까지 올랐으나 고도에서 쓸쓸히 삶을 마감해야 했던 파란만장한 인물이 나폴레옹이죠.

 

  사실 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사람이기도 합니다.


프랑스혁명전후 국내외 정치적으로 복잡한 시기에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은 후 혁명전파를 내세우며,
주변국과의 전쟁에서 연이어 승리하며 1804년 국민투표를 거쳐 황제에 오르게 되거든요.

 

 

 

 

특히 귀족층의 전유물이던 장교단이 프랑스 혁명으로 쇠퇴해 진 시기로서,

고속 승진한 덕에 20대에 장군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니 그에게는 시대적인 운도 크게 따른 셈이죠.

 

  하지만 과유불급이었던 걸까요!

 

불가능은 없다며 승승장구하던 그도 1815년 워털루 전쟁에서 영국에 패하면서 운명의 하산길로 접어 들게 됩니다.


남대서양의 외로운 섬, 가장 가까운 육지까지 1,200㎞나 떨어져 있는 세인트 헬레나섬이
프랑스에서 태어난 가장 뛰어난 군인황제의 유배장소로 결정된 거죠.

 

 

 

 

이후 나폴레옹은 1821년 사망하기까지 영국령 세인트헬레나를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사망후에도 그의 유해는 섬에 안치되었고, 1840년에서야 파리로 운구되어 국장을 치르게 되거든요.

 

 

파리 앙발리드에 묻혀있는 나폴레옹

 


    유언장 낙찰소식이 더욱 놀라운 점은 낙찰된 유언장이 원본도 아닌 사본이라는 사실입니다.


가치를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유언장 원본은 현재 프랑스 국립문서 보관소에 보관돼 있으며,
경매에 나온 사본은 1821년 나폴레옹을 보필했던 몽톨롱 백작이 대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나폴레옹은 자신의 유언장이 영국에 의해 파손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여러 장의 사본을 남겼다고 하는데요, 이번에 나온 사본은 몽틀롱 백작의 후손이 보관해 왔다더군요.

 

 

 

 

  예상보다 3배나 높은 가격으로 낙찰받은 프랑스인이 누군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나폴레옹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여전한 사랑을 보여주는 징표로 볼 수 있겠지요.

 

프랑스 역사에서 나폴레옹만큼 주변국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던 장군은 없었거든요.
때문에 한때 강성했던 프랑스의 위세를 기억하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그는 영원한 영웅일 듯 합니다.

 

  나폴레옹의 유언장은 그의 나이 51세인 1821년 4월 16일에 작성한 것으로,
이성적인 평소와 달리 감정에 싸여 작성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더군요.

 

 

 

 

  죽음을 앞에두고 담담하기 어려움은 황제나 일반인이나 크게 다를 게 없겠지요.

 

나폴레옹은 유언장에서
'죽음이 가까워 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죽으면 유해를 사랑하는 프랑스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센 강에 뿌려달라'며 자신이 소유한 보석과 가구, 도자기, 책 등을 어머니를 비롯한 측근들에게
잘 분배해 달라는 부탁하고 있다네요.

 

 

 

  유럽을 강풍처럼 석권하며 자신의 형제와 친인척들로 여러나라의 왕까지 세운 그 도도했던 세월을,
죽음을 앞에 두고 과연 어떻게 회상했을까 궁금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