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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역사사색

박근혜와 아웅산 수지

 

  19대 국회의원 선거결과를 보면서 여전한 박근혜의 파워를 느낀 분들이 많았을 겁니다.
국토의 절반이상을 새누리당의 붉은 칼라로 칠해진 그래픽화면을 보았을 때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정책이나 비전보다는 박근혜에 대한 무의식투표이며 열성적인 '몰입투표'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처럼 수도권을 제외한 영남지역등의 국민들이 박근혜를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지더군요.

 

데이비드 부룩스의 '소셜 애니멀'에 인용된 미국인의 정당지지경향에 관한 연구사례를 보면,
지지하는 정당은 엄격한 판단에 의한 것보다는 거의 부모의 영향등 과거 환경에 많이 좌우된다고 합니다.
부모가 공화당을 지지해 왔다면 자식들도 거의 공화당을 자연스럽게 지지하게 된다는 거죠.
즉, 어린 시절에 익숙했던 음식을 평생 친숙하게 먹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일부국민들의 박근혜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게 됩니다.
왜냐하면 박근혜는 개인적으로 쌓아올린 업적때문에 지지를 받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잘 만났다는 거죠.
과거 오랜 세월동안 박정희와 육영수를 지지한 부모들과 후손들이 보내는 지지라는 추론이 가능하거든요.

 

 

 

 

  아울러 박근혜가 거둔 총선승리의 원인을 생각하다보니 버마(미얀마)의 아웅산 수지여사가 생각나더군요.
아웅산 수지는 버마 독립운동 지도자인 아웅산의 딸로서 지금까지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으로 살아왔습니다.
김대중대통령처럼 군사독재정권의 핍박으로 오랫동안 망명과 가택연금 생활을 하면서도 국민과 함께 했죠.

 

그러한 공적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서 1991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2004년 4월엔 5.18 기념재단이 시상하는 '제5회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얻어낸 지난 3일 버마보궐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민주화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고 있죠.

 

그에 반해 박근혜는 남로당 출신의 친일파로서 군사독재권력을 행사하며 민주화운동을 억압한 박정희와,
자애로운 국모로 알려진 육영수여사의 딸이라는 부모의 이미지를 걸치고 정치일선에 나섰을 뿐입니다.

일정부분 경제발전을 이룩한 박정희대통령의 업적과 육여사의 죽음에 관한 안타까운 기억을 가진 국민들에게,
두 사람의 딸인 박근혜는 그 어떤 정치인도 갖기 힘든 후광을 확실하게 어깨에 걸치고 있는 셈이거든요.

 

때문에 아웅산수지에 대한 버마국민의 지지와 박근혜에 대한 지지사이에는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수지여사는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국민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고 마침내 결실을 이룩하게 된 사람이지만,
박근혜는 독재정권의 공주로서, 또 독재자의 영애로서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 명백하거든요.


  즉 국민들이 자신을 낳은 부친의 독재로 죽어가고 다칠 때 청와대에서 호위호식했던 사람일 뿐입니다.

그렇게 볼 때 일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는 죽은 두 사람의 이미지를 살아있는 박근혜에 몰입시킨 것입니다.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쓰러졌을 때 국민들은 어머니를 잃은 것처럼 깊이 슬퍼했고,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에 생명을 잃었을 때 국민들은 아버지를 잃은 것처럼 울며 슬퍼했었죠.
오랜세월동안 대통령은 오직 박정희였고, 영부인은 오직 육영수여사만 접해 본 국민들로서는 매우 당연했거든요.
마치 왕과 왕비를 졸지에 잃은 군주국의 백성처럼 깊은 슬픔을 느낀 분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정치는 생생히 살아있는 생물이어야 함에도 이처럼 오래된 과거의 화석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박정희의 장점과 단점을 역사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것처럼 박근혜에 대한 몰입도 냉철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특히 대통령을 직접 선출할 수 있는 권리조차 주지 않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했던 박정희의 공죄를 말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로 가는 회귀성 투표, 향수 투표가 아니라 국민들의 현실에 대한 깨우침이 필요하겠죠.

 

  또한 전두환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박근혜가 국민과 함께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점도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 당시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염원을 박근혜가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가능한 참여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랬다면 유신독재에 대한 냉철한 국민들의 거부없이 '아버지의 뜻'을 새롭게 펼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부모의 후광에 몰입한 일부 지역의 국민들외에는 지지해 줄만한 이유를 주지 못했거든요.

 

 

19대 국회의원 선거결과

 


  아울러 민주주의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국민들이 너무도 쉽게 얻은 투표권을 낭비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투표는 개인의 삶의 개선과 국가라는 공동체적 발전을 위한 국민의 현명한 권리행사가 될 때 의미가 있습니다.

 

  앞으로 대통령선거까지 남은 기간동안 집권당의 대선주자로서 인상적인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해 집니다.
지역색에 물들지 않은 냉철한 수도권 국민들의 지지없이는 대통령 당선이 힘들 수 있다는 점,
박정희와 육영수라는 부모의 후광을 거부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박근혜가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 나라는 박근혜와 특정 지역만의 국가가 아니라 전 국민의 행복한 공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