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경악하게 했던 국정농단 재판이 현재 진행중입니다.
얼마 전에는 피고인 박근혜가 발가락통증을 이유로 며칠 불출석했는데요,
법원의 구인압력을 받고 마지못해 출석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씁쓸하더군요.
전직대통령의 품위를 어느 곳에서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품위란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을 의미합니다.
전혀 자격이 없는 자가 자의반 타의반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농단만 일삼았다는 점에서,
지적이고 성숙한 인물만이 보여줄 수 있는 품위를 챙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최근 청와대에서 국정농단사건과 관련된 자료가 계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숨기는 자가 범인’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과거 특검팀의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하더니 그만큼 숨겨야 할 것이 많았나 봅니다.
문제는 박근혜가 법적처벌을 받는다 해도 예전의 위치를 되찾기는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조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추한 내용이 가득해 치부가 세상에 계속 드러날 일만 남았거든요.
박근혜가 마지못해 재판에 출석하는 사진을 보면서 문득 또 다른 사진이 떠올랐습니다.
갑자기 쏟아진 장맛비에 폐지가 젖자 바닥에 앉아 절망에 빠진 한 노인의 모습이었습니다.
두 사진을 번갈아 보면서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같지만 다른 인간의 절망이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권력까지 누렸으나 범죄자의 나락으로 추락해 버린 박근혜의 절망과
단 몇 천원을 벌기위해 장맛비를 맞으며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의 절망은 차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박근혜의 오늘은 오만과 탐욕의 결과이지만 폐지 수집노인은 생존과정에서의 절박한 절망으로 보이거든요.
박근혜보다 폐지수집노인의 절망이 가슴에 남는 것은 그가 더 인간적이고 진정성이 보이기 때문일 겁니다.
폐지수집노인의 절망을 표현한 사진 너머로 그 이상의 절망을 그린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노르웨이의 위대한 화가 뭉크가 그린 ‘절규’입니다.
절망을 표현한 그림 중 뭉크의 ‘절규’처럼 가장 극적인 그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을 보노라면 인간 내면에서 꿈틀대고 있는 불안과 절망이 등짐 가득 무겁게 누릅니다.
뭉크가 이 그림을 그리게 된 상황을 시로 남겼는데요, 깊이 동감하게 됩니다.
‘암청색 골짜기(피오르)와 도시 위로 피와 불의 혀가 있었다 나는 불안으로 떨면서 거기 서있었다 그리고 나는 자연을 관통하며 지나가는 무한의 비명을 느꼈다.’
현재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국가 중에서 2003년부터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인자살율도, 빈곤율도 수위를 다투고 있으며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더불어 사는 연대의식을 구현할 때만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후텁지근한 장마 속 무더위에서 가끔 찾아주는 바람, 바람이 무척 고마운 요즘입니다.
이처럼 바람은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서도 무더위를 물리쳐 기력을 회복시켜 주는데요,
마찬가지로 타인의 고통을 함께 해결하려는 공동체의식이 바람이 되어 분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나아가 번잡한 삶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묵히고 성숙된 지혜’가 함께 한다면 금상첨화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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