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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역사사색

고노담화와 위안부

 

  최근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문제에 관한 대결이 벌어졌었지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부인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이며 반인륜적 처사"라고 강력히 비난했었는데요,

 

이에 대한 반론에서 다카시 오카다 일본 제네바대표부 차석대사는
"지난 1993년 고노 담화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피해자들에게 깊은 사죄를 했고
이후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적이 없다.


다만 보상 문제에 대해선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양자 간 조약과 협약 등을
통해 법적으로 해결됐다며 한국은 지난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 완전히 해결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즉각 재반론에 나선 유연철 제네바대표부 차석대사는
"한일협정 체결 당시 이 문제가 해결된 적이 없고, 일본 정부는 여전히 법적 책임이 있다.
유엔의 쿠마라스 와미와 맥두걸 보고서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나 어떤
양자조약을 통해서도 이 문제가 해결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최근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
고노담화를 부인하려 하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일본제국의 피해자인 북한과 중국대표도 일본의 역사인식을 강하게 비난했는데요,
당장은 '고노담화'를 계승하지만 하지도 않은 보상이 해결됐다며,
하늘아래 명백한 잘못까지 부인하는 일본의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쟁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라는 말이 있듯 지금까지 무수한 전쟁이 있었지만,
전쟁의 효율적 수행이란 명목으로 강제동원한 '위안부'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본제 만행입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12일 기자회견에서
"군 위안부 강제연행이 없었다는 것은 제1차 아베 내각의 국회 답변에서 밝히고 있다"고 답했더군요.

즉 강제연행한 증거가 없다면서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갔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거죠.

 

 

역사왜곡의 몸통 아베

 

위안부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한 요시미 요시아키는 최소 8만명에서 20만명으로 추산되며
그중 조선인 여성의 비율이 절반이 넘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최대 20여만명의 어린소녀들이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가 살아 돌아온 군위안부가 200명도 안됩니다.
현재 살아 계신 56분의 할머니가 아직도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한 채 통한의 나날을 보내고 계시죠.

 

※ 위안부


1931년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킨 이후부터 1945년 패전까지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설치한 위안소에 강제동원되어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 고노담화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일본군과 군의 강제성을 인정한 담화이다.
고노 관방장관은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ㆍ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관여하였다고 발표했으며,
일본군위안부들에게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올린다고 말하였다.

 

 

눈감고 귀막은 아베

 

  지난 28일 일본정부는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 차원의 고노 담화 검증팀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고노 담화 내용이 아닌 작성 과정을 검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며 억지를 부리다가
불리하면 말을 바꾸면서까지 고노담화 무력화에 나서겠다는 속내를 드러내 놓고 있는 거죠.

 

  고노담화 무력화, 위안부 진실왜곡의 중심에는 역시 아베가 있습니다.


2007년 제1차 아베 신조 내각은 각의국무회의결정을 통해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 군과 관헌에 의한
군위안부 강제연행의 증거는 없다'는 입장을 채택한 바 있으니 새삼 입장이 변할 이유는 없겠지요.

 

하지만 역사의 하늘을 부정의한 손바닥으로 가릴 수는 없습니다.
동남아 여성 위안부에 대한 강제 연행을 군자금을 활용해 은폐하려 했다는 전 일본군 병사의 증언이 확인됐거든요.

 

지난 7일 하야시 히로후미 간토가쿠인대학 교수는 도쿄 중의원 제1의원회관에서 열린 고노 담화 수정 반대 집회에서
군 위안부 강제 연행 사건인‘스마랑’사건에 연루됐던 일본인 병사의 증언 기록에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고 밝혔습니다.

 

 

 

 

  하야시 교수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962년 8월 일본 해군 병조장을 지낸 한 병사는 태평양전쟁 당시 자신이 속한 부대가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서 네덜란드군 하사관 부인 5명과 현지인 여성 270여명을 발리섬으로 끌고 가 위안부로 삼았고,
종전 후 처벌을 면하기 위해 군자금 약 70만엔으로 피해 지역 주민들을 회유했으며
조직적인 은폐공작이 효과를 보여 가장 걱정했던 위안소 건은 한 건도 제소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고 합니다.

 

이 내용을 담은 문서는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보관돼 있다고 하야시 교수는 전했습니다.

 

 

 

 

이처럼 명백한 역사적 사실도 부정하는 일본에 대해 지속적이고 강력한 외교적 전개가 필요합니다.
독도문제와 연계시켜 일본의 거짓주장에 쐐기를 박는 계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부대라는 '정신대'로 까지 불렸던 종군위안부 문제!
반드시 우리 세대에서 해결하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