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인/역사사색

마거릿 대처 사망

 

  영국 최초 여성 총리를 지낸 마거릿 대처여사가 8일 오전 뇌졸중으로 별세했습니다.


시골마을 식료품가게의 둘째 딸로 태어나 영국 최초의 여성총리, 영국 최장수 총리가 된 대처!


보수적인 영국정치계에서 여성이라는 단점을 극복하고 총리까지 오른 참 대단한 여성이었습니다.

 

골다 메이어등 강한 여성 정치가에게 붙이는 별명인 '철의 여인'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철저한 반공노선을 추구했던 그녀에게 소련군 신문 레드 스타가 비난하면 붙였던 별명이었죠.

 

  총리재임기간 영국을 회생시킨 업적을 인정받고 있어 국장의 예우를 받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에서 가장 최근에 치러진 국장은 1965년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장례식이라고 하네요.

 

 

 

 

 

 

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에 이어 두번째로 사후 최고의 명예를 얻게 된 거죠.
엘리자베스 여왕의 며느리였던 다이애나비도 왕실의 반대로 국장이 아닌, 왕실장으로 치러야 했거든요.

 

작은 구멍가게였지만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아버지의 가르침이 대처의 성공을 잉태했습니다.
아버지 앨프리드 로버츠는 학력은 짧았으나 성실히 일해 사업을 번창시켰으며,
대처가 두 살 때 시의원에 당선된 이래 그랜섬의 시장 자리까지 오른 자수성가형 인물입니다.

 

  대처는 1979년부터 1983·1987년 총선거에서 승리하여 3기를 연임하는 영국사상 최장기 집권에 성공합니다.
역경을 이기고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던 처칠조차도 이루지 못했던 최대성공이었죠.

 

 

 

 

 

 

  집권 후 긴축재정 실시로 영국의 경제 부흥을 이끌고, 1982년에는 아르헨티나와 벌인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하여 강인한 정치적 역량을 과시합니다.

 

다만 과감한 사유화와 노조 와해, 교육·의료 등 공공분야에 대한 대폭적인 국고지원 삭감 등을 추진한 `대처리즘`으로 찬사와 함께 독단적인 정책 운용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임기내내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지만 실업자 양산과 양극화를 심화시킨 신자유주의 정책의 한계였죠.

 

 

 

 

 

 

  특히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소련에 강력히 대응해 냉전종식을 이끌어 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럽 최초로 미국 크루즈 미사일을 배치하는등의 친미외교로 '미국의 푸들'이라는 조소도 받았었죠.

 

1990년 새로 출범한 유럽통합에 반대하다가 당의 반발로 1990년 11월 총리직에서 자진 사임하고,
1991년 5월 정계를 은퇴합니다. 본인이나 국가적으로도 참 파란만장한 세월이었을 겁니다.

 

1992년 남작 작위를 받고 상원의원으로 활동을 재개했으나,

10여년전 뇌졸중 증세로 인한 치매로 대외 활동을 자제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처 전총리의 공과는 당대의 국민과 역사의 제단에서 낱낱이 평가받겠지만,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그녀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성공한 정치가, 여성들의 본보기라는 사실입니다.

 

현 박근혜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대처 전 총리를 거론한 바 있다더군요.
정치가 남성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여성정치인들도 많이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영웅호걸도 결코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는 진리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시대를 함께 했던 멋진 여장부, 그녀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