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었죠. 얼마전 어떤 글에서 이 책을 극찬하기에 다시 관심이 생기더군요.
이 소설은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4년 반동안 고심하며 집필한 고통의 글쓰기와 함께 출판시 화제가 유명하지요.
1856년 몇몇 대목이 음란하고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작가, 연재하던 잡지 책임자, 인쇄업자가 기소됩니다.
유능한 변호사 쥘 세나르의 통쾌한 변론으로 무죄선고를 받게 되었지요.
법정에서 이 작품이 '단호히 비난받아야 마땅한 면'이 있지만 '도덕적 교훈'을 담고 있음을 인정했거든요.
선고후 1857년에 출판된 이 소설로 플로베르는 문학적인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동시에 누리는 작가가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명석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샤를르 보봐리와 결혼한 농부의 딸 엠마 루오, 주인공 보봐리 부인이죠.
엠마는 결혼초부터 샤를르와 결혼한 것을 후회하며 소설속 상류층의 화려하고 낭만적인 생활방식을 동경합니다.
발전가능성 없는 시골의사로 그저 사람좋고 지루한 남편을 무시하며 다른 남자들에 대한 환상을 키운 결과,
처음에는 바람둥이 로돌프와, 로돌프에게 버려진 후에는 소심한 청년 레옹의 정부가 되어 환락의 나날을 보냅니다.
가정이 어떤 상태인지, 부인이 어떤 행각을 벌이는지 전혀 모르고 무조건 부인을 사랑하는 어리숙한 남편!
그럴수록 엠마의 방탕은 더욱 대담해지면서 빚을 얻어 낭비한 결과 마침내 파산선고를 받는 지경에 이릅니다.
당장 갚아야 할 돈을 두번째 연인 레옹에게 부탁해 보지만, 이미 엠마와 헤어질 결심을 한 그는 돕지 않습니다.
그러자 자기를 버린 로돌프를 찾아가 애원과 유혹으로 돈을 구걸하지만 그 역시 돈을 주지 않았지요.
비참하게 돌아오던 길, 남편과 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지 않고 약제사의 창고에서 비소를 입에 넣고 맙니다.
평생 무시하던 남편에게 잘못을 빌고 용서받는 것 보다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거죠.
엠마의 죽음과 파산의 슬픔속에서도 빚을 조금씩 갚으며 딸과 살아보려고 노력하던 어느 날,
샤를르는 보관중인 엠마의 비밀함을 열어 봅니다. 남겨진 연애편지들을 읽고 부인의 방탕을 마침내 알게 된 남편!
비탄에 몸무림치며 괴로워하던 그는 넋이 나가버린 채 심장의 가녀린 울림을 슬픔의 늪에 맡겨버립니다.
우연히 로돌프를 만난 샤를르는 "난 당신을 원망하지 않는다. 이게 다 운명탓'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다음날 고통에 겨운 심장의 박동을 스스로 멈추고 맙니다. 맥박을 뛰게 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게지요.
고아가 된 딸 베르트는 가난한 친척아주머니에게 맡겨져 돈을 벌도록 방직공장에 다니게 됩니다. 불행한 결말이죠.
부록을 보니 이 책이 사실주의 소설의 걸작이며 기교의 훌륭함등에서 많은 찬사가 펼쳐져 있더군요.
글쓰는 소설가나 지망생들에게는 그 부분에서 뛰어난 책일 거예요, 다만 독자로서 남는 것은 아픔이었습니다.
소설이 머리속을 오가는 단순한 픽션을 잡아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회상을 드러내 보인다는 점에서 말이죠.
이 소설도 당시 발생했었던 '들라마르 사건'이라는 실제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거든요.
즉 현실의 자아가 이상속의 자아를 제어하지 못하고 결국 이상속 자아가 현식의 자아에 밀려 운명적으로 파산하는 불행한 인간의 모습을 의미한다는 '보봐리즘'을 떠올리게 되더군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면서도 잘못된 사랑을 향해 달려갔던 엠마의 무분별한 욕구, 불행으로 가는 자유의지였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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