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라 그런지 역사책을 자주 읽게 됩니다.
오래전 '한국근대사'와 '한국현대사', 이후 '고쳐 쓴' 두 책을 읽을 때의 기억이 새롭네요.
독보적인 원로 사학자인 동시에 우리 근현대사부문의 거두인 강만길 교수의 저서였거든요.
이 책 '역사가의 시간'은 일제후반기 초등학교 입학부터 '반민규명위' 활동까지를 다룬 그 분의 자서전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험난했던 사건은 일제시대,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쿠데타로 볼 수 있지요.
역사적 큰 사건을 직접 경험하면서 느낀 역사가로서의 울분과, 안타까움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치열하게 행동하는 과정에서 군사정권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광주항쟁후 항의집회서명건, 김대중 자금수수등 위조된 죄로 고통받은 이후 곧 해직교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군사독재정권의 독니에 물려 감옥에 다녀 온 이후 전공을 바꾸게 된 저자!
원래 저자는 조선상공업을 전공하여 관련 논문을 작성하려고 무수한 자료까지 준비한 상황이었지만,
역사가로서 당대의 상황에 눈감고 수백년전 역사를 말하는 것이 무슨 소용있느냐는 자각하에 결단을 내린 거죠.
해직된지 4년만인 1983에 복직하여 평생 봉직했던 고려대학교에서 은퇴할 때까지 머물게 됩니다.
퇴임 후 상지대 총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광복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남북역사학자모임을 이끌었고,
김대중정권부터 노무현정권까지 약 10년간 통일고문을 맡아 활동한 행동하는 역사학자이기도 했습니다.
2007년부터는 사재를 털어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을 설립해 젊은 한국근현대사 연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군사독재정권의 폭압때문에 역사학이 본연의 역할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역사는 다소 주춤거릴 때도 있지만 결국 가야할 방향으로 가야할 만큼 가고 만다."는 확신을 보여 줍니다.
또한 해방정국을 이끈 정치인들의 무능이 동족상잔을 막지 못하여 적대적인 분단이 고착화되어버린 상황과,
해방 15년후 일제 침략자 편에 섰던 인물, 박정희가 중심이 된 군사독재정권을 역사적 오점으로 보고 있더군요.
군사정권 30여년동안 그들이 해결한 것은, 자신들의 치부욕과 재벌중심의 경제체제 구축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70 능참봉이 된 저자가 '보수'라는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을 보전하여 지키려는 것인지 묻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보수는 친일파를 필두로 반공파, 군사독재파로 이어지는 계보를 갖고 있는데,
과연 그들이 보수하려는 것이 친일인지, 반공인지, 군사독재인지 평소 궁금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21세기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은 우리가 평화적으로 분단을 극복하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보수라는 사람들은 과거와 단절해야 하고, 진보라는 사람들도 각자의 담쌓기에만 골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유명한 역사입문서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E H. 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파의 간교함, 좌파의 멍청함"
뭔가 뼛속 깊이 느껴지는 게 없는지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네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좌파의 멍청함이 큰 요인이었고,
부도덕한 이명박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보수언론을 등에 업은 우파 한나라당의 간교함에 있었거든요.
부록으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를 맡아 2년간 활동하면서 작성한 일지가 첨부되어 있는데,
읽다보니 해방후 60년이 지난 노무현정권기에 시작된 친일청산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하게 되더군요.
저자는 E H. 카교수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한 것은 카가 활동한 50년대적 시각이므로,
"역사는 인류사회가 추구하는 이상의 현실화과정"이라고 정리하고 있는데 동감하며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아울러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기준을 민주주의 발전의 정도와, 평화통일의 진전 정도로 볼 때,
현 이명박정권은 그 무엇하나 이룬 것 없는 그저 '잃어버린 5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은 원로 역사학자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평이하게 저술했음에도 술술 익히는 책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직접 겪은 저자가 자신의 삶과 역사적 사건에 대한 논평을 버무린 내용이거든요.
더구나 책 두께도 만만치 않고 내용도 약간 어려울 수 있지만, 많은 분들이 읽으시면 좋겠다 싶어요.
우리나라 역사의 큰 고비들에 담대하게 맞선 역사가의 시선과 강직한 애국자의 자세를 느낄 수 있거든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찾을 수 없을 때 '우연'이라 하고,
그 원인이 밝혀졌을 때 '필연'이라고 한다.
인류역사의 큰 길은 지구 전체를 하나의 평화 공동체로 만들어 가는 길이다.
역사 불변의 길을 제대로 아는 식자만이 지성인이며,
역사의 길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식자는 한낱 지식인에 불과하다.
인간성과 비인간성을 구분하는 본질적 기준은 '진실성의 유무'가 아닐까 한다.
- 강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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