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서 시작하여 독일 총통으로 자살한 아돌프 히틀러는 인류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사람일 겁니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많은 독일 국민들이 환호하며 지지를 보냈고 끝까지 배신하지 않았던 독재자지만,
자살하는 즉시 그가 만든 제 3제국과 국가사회주의는 한 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마치 그가 잠재웠던 깊은 마법에서 깨어난 것처럼 말이죠.
히틀러에 관한 책은 많이 나와 있고, 다양하게 읽었지만 이 책은 매우 독보적인 평전이더군요.
역사와 법률, 독일학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한 요아힘 페스트는 철저한 고증과 균형있는 시대감각으로 히틀러라는 한 인물의 전기를 넘어 전체적인 시대사를 폭넓게 다루고 있거든요.
1973년에 독일에서 출간된 이 책에서 저자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었던 한 인물이 독일 총통이 된 과정과,
전 유럽을 손에 흔들고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하며, 자신과 독일국민을 나락으로 내몬 과정을 보여 줍니다.
국내에서 1998년에 출간된 이 책은 1,3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으로 2권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권은 히틀러 출생에서 수상관저까지의 과정을, 2권은 권력장악에서 최후까지를 상세하게 다룬 역작입니다.
1차대전 패배후 성립된 바이마르 공화국은 가장 민주적인 헌법에 기초한 민주주의 국가였죠.
로마 오현제중 한명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못난 아들 콤모두스에게 제위를 넘긴 것처럼,
이론적으로 가장 민주적인 바이마르 공화국이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를 낳은 안타까운 역설을 느끼게 합니다.
히틀러는 실업중학교를 중퇴한 후 평생의 꿈인 화가나 건축가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빈으로 떠납니다.
빈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하려고 하였지만 낙방하고 엽서에 그림그리는 일로 생계를 겨우겨우 꾸려 갑니다.
18살에 고아가 된 이후 30세까지 남자하숙방의 저급화가로 지내면서도 계층추락을 두려워 합니다.
글자 그대로 돈도 권력도, 학벌도 없는 히틀러는 삶에 희망을 갖지 못한 사회낙오자층이 되지만,
때마침 발발한 세계 1차대전은 그의 인생에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병역기피가 언제 일이냐는듯 자원 참전하여 용감한 연락병임을 인정받아 2급 철십자훈장을 받은데 이어,
사병은 받기 어렵다는 1급 철십자훈장까지 받아 추후 정치활동을 하면서 매우 큰 도움을 받게 되거든요.
종전후 군대에 머물때, 타고난 연설능력을 발견한 히틀러는 상부의 명령으로 독일노동자당 모임에 참가합니다.
그 모임을 시작으로 탁월한 연설능력과 설득력에 매료된 추종자들이 늘면서 정치가로의 변신을 결심합니다.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즉 나치당의 선전역할로 정치활동을 시작한 히틀러의 상승이 시작되는 거죠.
놀라운 카리스마와 통솔력, 위대한 연설가, 탁월한 연출가, 세계제국건설이라는 공상가로서의 꿈과 결부되어,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 세계적 경제공황의 혼란기에 고통받던 국민의 지지로 마침내 1당으로 오르게 되거든요.
이 시기부터 나치당은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의 일부 계층을 제외한 전체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되며,
힌덴부르크대통령으로부터 1933년 1월 30일 수상에 임명되어 합법적으로 제 3제국 건설에 성공하게 됩니다.
저자는 이탈리아 무솔리니가 시작한 파시스트 운동에 있어 세 가지 요소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첫째 도덕적, 경제적, 반혁명적 불만을 가진 소시민,
둘째 군사적, 합리적 요소
셋째 독특한 지도자의 카리스마인데 아돌프 히틀러가 세 요소를 버무려 마침내 자신의 시대를 만든 것입니다.
내면에 감춰진 파괴욕구를 독특한 능력과 뛰어난 정치력의 외투로 감싸 국민을 속이는데 성공한 거죠.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의 경제난을 극복하고 베르사이유조약에서 빼앗겼던 지역을 차지하던 1938년대에,
히틀러의 명성은 절정에 달합니다. 때문에 저자는 히틀러가 그 때 죽었다면 위대한 정치가로 남았으리라 말하더군요.
막스 베버가 탁월한 지도자의 품성으로 국민적인 정당성, 맹목적인 복종에 대한 요구, 두 가지를 주장했었지요.
히틀러는 정치활동을 시작한 후 이러한 지도자 이념을 주장하며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해 왔고,
힌덴부르크대통령 사망후 대통령권한까지 통합한 이후에는 무제한의 독재권력을 행사하기에 이르게 된 거죠.
때문에 1936년이후 군부의 암살시도가 다수 있었을 뿐, 국민의 반나치스 저항운동은 보기 어렵게 됩니다.
전쟁말기 동부에서 소련이, 서부에서 연합군의 공격으로 심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국민의 무한복종은 끝나지 않습니다.
영국와 프랑스의 유화정책을 이용하여 오스트리아 합병후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본격 전쟁에 뛰어든 이후,
독일민족의 생활공간을 확보하려는 [나의 투쟁]을 집필할 때부터의 집념을 실현하기 위해 소련까지 침공한 히틀러!
초기 전격전후 스탈린그라드혈전에서 참패하면서 연합군과 대치한 서부전선을 비롯한 모든 전선에서 밀리게 됩니다.
독일도시들이 무차별 폭격을 당하고 국민이 고통받지만 히틀러는 오히려 전면전을 선택하면서 희생을 무시합니다.
결국 소련군이 베를린 수상관저 근처까지 진격하자, 히틀러는 오랜 정부 에바 브라운과 동반자살로 막을 내립니다.
방대한 책을 읽으면서, 읽고 난 후에도 고비마다 히틀러를 도왔던 우연에 대해 많은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군의 마지막 암살시도까지 모면한 히틀러는 자신을 돕는 신의 섭리라는 확신을 이어갔기 때문이지요.
히틀러가 믿는 섭리가 어디에서 유래했든, 분명한 사실은 그 섭리가 인류를 파괴하는데 악용되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히틀러는 애견가이면서 채식주의를 실천하며 동물학대에 반대한 최초의 동물보호법을 제정했습니다.
만약 그가 세계제국을 건설했다면 흡연금지와 채식주의를 정책적으로 시행할 계획이었다고 하더군요.
비폭력 평화주의자인 톨스토이의 채식주의와 전쟁광인 히틀러의 채식주의에 깊은 모순을 느끼게 됩니다.
채식주의는 동물을 살상해서 만드는 식탁을 거부하는 것인데, 히틀러는 인간을 대량살상한 장본인이거든요.
히틀러의 삶과 정치, 가치관은 모든 면에서 지극히 불안정했던 과격한 내면을 전생을 통해 드러내 보입니다.
게으른 천성이이지만 뛰어난 통찰력과 결단력, 약자에 대한 환멸, 유대인 증오로 뭉친 인물 말입니다.
그런 인물에 매료되어 전쟁도구로 전락한 독일국민을 극악한 독재자의 피해자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인 거죠.
그 어느 국민보다 배웠다는 독일국민들이 투표로, 즉 합법적으로 선택한 독재자가 히틀러 아니던가요?
다른 민족을 노예화한 세계제국이란 망상으로 유럽과 자신의 민족을 파멸로 던져버린 희대의 도박꾼, 히틀러!
역사상 가장 잔인한 독재자인 히틀러는 악마나 악마의 자식이거나, 마법사가 아닌 현실 정치가였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국민의 깨어있는 정신과 맑은 눈이 필요하다는 역사의 가르침을 되새기게 됩니다.
"나에게 있어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 모든 후퇴는 우리를 앞으로 몰아가는 채찍질에 지나지 않았다.
파괴하려는 생각이 언제나 내 안에 있었다."
- 아돌프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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