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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일상에서

법정스님, 그리고 릴케 엄숙한 시간

 
  의정부화재를 당한 20대 여성이 끝내 스러졌더군요.

 

혈혈단신 고아로 미혼모가 되어 5살 아들을 키우면서,
고단했을 고인의 삶과 죽음 앞에서 지금도 가슴이 먹먹합니다.

 

모든 생명에게 부여된 삶과 죽음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겠지만,
최소한 사는 동안 행복할 권리는 가져야 합니다.


어떤 철학과 논리를 떠나 생명에 깃든 천부적 존엄이기 때문이죠.

 

불행하게도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슬픔과 고통이 존재합니다.
생명을 탐욕처럼 걸치고 살아야 하는 이 세상에서 슬픔과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슬픔과 고통을 줄이는 방법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바로 나눔과 배려, 자비정신이지요.

 

  최근에는 하늘을 보며 법정스님을 자주 떠올리게 됩니다.
진짜 스님의 길을 나눔과 무소유의 삶으로 보여주신 분이기에 늘 존경하는 분이거든요.

 

 

 

 

  직접 심고 가꾼 후박나무 아래서 가장 소박하게 자연으로 돌아가셨는데요,
사실 법정스님은 평소 고승의 죽음인 천화를 생각해 오셨다고 하더군요.

 

'천화란 임종을 앞둔 고승이 홀로 깊은 산속으로 걸을 수 없을 정도까지 걸어가 어느 지점에서 쓰러지면
자신이 누울 자리를 파고 나뭇잎을 주워모아 바닥에 깔고 스스로 자신을 덮어 생을 마치는 형태'라고 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인데요,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 후박나무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언젠가 한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 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맞잖아요, '인생은 공수레 공수거!'

 

  동물학자 최재천 교수에 따르면,
올해의 동물인 양은 식탐이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고 하며,
동물중에서 인간과 개미만이 배가 불러도 먹을 것을 계속 축적한다고 하더군요.

 

단언컨대, 축적의 양을 조금만 줄이면 소외된 이웃, 모든 약자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과 연대감을 떠올리게 하는 릴케의 시 '엄숙한 시간'을 마음에 담아 봅니다.

 

 


                엄숙한 시간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지 울고 있다.
세상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지 웃고 있다.
세상에서 까닭 없이 웃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보고 웃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지 걷고 있다.
세상에서 정처 없이 걷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지 죽고 있다.
세상에서 까닭 없이 죽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엄숙하다는 것은 정중하고 위엄이 있다는 뜻인데요,
절대 가볍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네 생명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릴케의 조언대로 평소 각자의 고독과 사색을 즐기면서 더욱 성숙해 지고,
그 자체로 타인과 더불어 사랑으로 하나의 세계가 될 수 있는 경지를 꿈꿔 봅니다.

 

'가장 위대한 종교는 친절' 이라는 법정스님의 말씀이 떠오르는데요,
주어진 삶동안 늘 겸손하게 진심과 사랑을 나누는 '친절한 사람' 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