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커피를 마실 때면 늘 앞 건물을 바라봅니다.
언젠가 나타날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데요,
주인공은 그 빌딩 펜트하우스에 사는 까치랍니다.
하얀 날개에 햇빛을 받으며 날아오를때면 정말 멋지거든요.
몇달전에는 그 곳에 까치부부가 살았습니다.
까치부부의 비행을 볼 때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이 떠오르더군요.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보낸 내용인데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쓴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개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하여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까치와 소설의 멋진 구절을 음미하며 하늘을 보노라면 참 행복했지요.
그런데 한달 전부터인가 까치부부가 보이지 않는 거예요.
관리사무소에서 펜트하우스에 머물러 온 까치 집을 철거한 걸까요, 까치부부는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옆 건물에서 작은 까치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라진 부부의 자식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참 반갑더군요.
오늘도 그들의 비행을 기다리며 하늘을 주시하노라니
어디선가 까치들이 "나 여기 있어요" 모습을 드러내며 멀리 날아 갑니다.
멋진 외모로 매력적인 비행을 하는 까치는 성격이 꽤 난폭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까치 주위에는 다른 새들이 보이지가 않더군요.
자세히 살펴보니 펜트하우스 주변처럼 높은 곳에는 까치가, 비둘기와 참새는 나무높이정도에서 보이네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그들 나름의 규율에 철저해 보이는데요,
자기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본성이 강해 맹금류가 침범해도 몰아내는 까치가 그 중심에 있어서겠지요.
세살정도 어린아이의 지능과 비슷할 정도로 똑똑한 까치는 외모도 당차 보이더군요.
거울을 이용한 연구에서도 한두 번 거울을 본 뒤 거울속의 존재가 자신임을 금방 알아챌 정도라네요.
어렵게 찍은 까치 사진
오늘도 까치를 기다리는 것은 잃어버린 자유를 찾고싶기 때문입니다.
진정 자유롭고 싶은데 절반도 갖지 못하는 그 자유 말이죠.
가장 갖고 싶은 자유를 월급봉투와 바꿔야 하는 현실의 벽을 깨뜨리지 못하니 알을 깨고 나오는 새가 부럽습니다.
알이라는 현실을 깨고 나와야만 더 넓고 푸른 세계로 날아가 원하는 자유를 찾을 수 있을텐데요.
이 삶이 다한 후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새'로 환생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최소한 사는 동안은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을테니까요.
물론 새들의 삶, 그 중 제가 좋아하는 까치들의 현실도 많이 힘듭니다.
도시에서는 전신주등에 집을 지어 정전피해의 주범이 되었고,
시골 특히 제주에서는 농작물에 피해를 입혀 길조가 아닌 천덕꾸러기가 되어 포획당하는 신세가 되었거든요.
그들의 서식환경을 파괴한 것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짙은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의 삶이든, 새의 삶이든, 모든 생명의 삶은 각자 감당해야 할 무게를 갖기에 그래서 생명은 연민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앞 아파트 옥상에 날아 온 까치가 '깍깍' 자신을 알리네요.
급히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려는데, 아~ 날아가 버립니다.
쉽게 허락하지 않는 자유처럼 그들의 사진도 정말 찍기 어렵습니다.
수타니파타의 한 구절을 음미하며 아쉬움을 삭여 봅니다.
'천둥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젖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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